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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인권교육을 통해 만난 사람들

인권교육을 통해 만난 사람들

호연(돋움활동가)

2012년 들어 부쩍 인권교육으로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지역아동센터 교사들, 중고등학생들, 지역아동센터 이용 청소년 등 이들과의 만남은 인권을 얘기하고 인권의 대한 반응을 읽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권리나 차별 같은 언어들에 위로를 받는 듯 보였고, 어떤 이들은 부담스러워 하거나 불편해 하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이 표현하는 적극적인 때로는 공격적이기도 한 반응에 진땀이 날 때도 있었고 아직은 넘기 어려운 벽을 만나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인권으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 걸기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8월에는 주로 다른 사회적 조건에 있는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이들 간의 차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시가 어린이 · 청소년 인권 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참가단을 모집했고, 나는 이들 중 고등학생들과 인권교육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반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인권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인권교육을 받아 본 경험이 없었다. 또한 각 지역별로 청소년들을 나누었는데 내가 맡은 반은 강남 지역 청소년들이었다. 자기소개서를 보니 중상층 가정의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나는 주로 빈곤가정 청소년들을 만나왔기 때문에 이번에 만날 청소년들이 인권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3번의 인권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이 조금이라도 인권을 이해하고 조례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청소년 인권에 대해 모둠별로 논의하는 내용 중에 "쫓겨 나서 살 곳이 없을까봐 부모 등 다른 사람들의 일방적인 명령을 들어야 하거나 인권 침해 등을 당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한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독립적 주거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청소년들이 이러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둠에서 의견을 나눈 후 발표를 했다. 모둠에서 나온 의견 중 하나는 "만약 청소년들에게 독립적 주거를 보장한다면 오히려 가출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것과 "부모님의 보호는 그럴만한 것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명만이 반론을 제기했고 다른 아이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와의 갈등이 덜하거나 가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할 만큼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집은 그래도 편안하고 떠나고 싶지 않은 장소인 듯 보였다. 또한 이들이 가진 '가출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느껴졌다. 이들도 청소년이지만 어른들처럼 '가출한 십대'에 대해선 관대하지 않았다.

유사한 시기에 빈곤가정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인권교육이 있었다. 청소년들이 가정, 학교, 지역아동센터에서 들었을 때 화가 나거나 속상했던 말들과 힘이 되거나 위로가 되는 말들을 써 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들은 구체적인 말보다는 속상하거나 힘이 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들이 힘이 되는 말들을 들은 경험이 적어서 일수도 있고 어려운 상황들, 그래서 바뀌었으면 하는 상황들이 말을 압도하고 있는 삶의 조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나온 의견 중 기억나는 것은 힘이 되는 말이나 상황으로 "집에서 나가라" 거나 "아빠가 일이 있다고 집에 안 들어올 때"라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부모의 지나친 간섭에 대한 이들의 거부감일 수도 있겠지만, 집에 있고 싶지 않은 상황들, 집이라는 곳이 편안하거나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 차별이나 권리 같은 개념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해석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경계를 흐리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상과 만나는 것에 대해 기대감 보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권의 보편성을 고민하면서 타자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직은 이러한 상상력의 과정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상상하는 것 자체가 버겁기도 한 과제이지만 인권을 통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