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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공고생이라고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요?

땅값 욕심에 폐교될 뻔했던 동호공고 최효경 학생 이야기

<들어가며>
서울 성동구과 중구를 나누는 남산자락에 자리한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아래 동호공고)는 주민 민원에 밀려 폐교 위기에 몰렸다 한 달여 만에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 학교 바로 옆에는 중구 부유층들이 몰려 산다는 남산타운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00년, 5160세대에 이르는 이 대단위 아파트는 개발업체와 재개발 조합원이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남길 요량으로 편법을 써 아파트를 쪼개 짓는 바람에 초등학교 신설 없이 완공됐다. 초등학교 부지를 꿀꺽하고 그 자리에 세대를 더 지은 것. 그 바람에 이 아파트에 입주한 어린이들은 30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위험한 찻길을 지나 통학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자연스레 지난 7년간 초등학교 설립은 주민들의 숙원이었고, 주민들은 동호공고 자리를 탐냈다.
중구의 핵심 표밭인 남산타운을 의식한 지역 정치인들과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동호공고가 아닌 주민들의 편에 섰다. 2004년부터 동호공고는 이전, 다른 학교와의 통폐합 등이 추진되다 이전 예정지 주민들의 ‘공고 절대 불가’ 여론에 부딪히는 홍역을 치러야했다. 그리고 올 2학기 개학을 며칠 앞둔 8월말, 서울시교육청은 이전도 통폐합도 아닌 폐교 예고를 통보해왔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의견은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채 내린 결정이었다.
지난해 방송문화컨텐츠 특성화 고교로 지정돼 방송영상과를 신설, 올해부터 신입생까지 선발한 학교로선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폐교 반대 운동이 시작됐다. 학생들도 서명운동에 나섰다.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도 반대 여론이 크게 일었다. 각계에서도 서울시교육위원회에 폐교 부당 의견을 전했다. 마침내 9월 14일 열린 서울시 교육위원회 소위원회에선 동호공고의 폐교 부당 결론을 내리고 시교육청에 초등학교 부지는 인근에 따로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동호공고 사태는 이렇게 한 달여 만에 막을 내렸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그 사이 인근 부유층 주민들과 ‘나랏일 하시는 분’들의 표 욕심에 쫓겨날 위기에 처했던 학생들의 가슴엔 커다란 생채기가 남았다. 더 많이 갖고자 하는 탐욕, 공고생에 대한 편견, 교육정책의 변두리에 밀려나 있는 실업계의 현실이 맞물려 빚어진 이번 파동은 실업계 학생들의 인권과 미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이 일을 겪으면서 동호공고 학생들의 마음은 어떻게 일렁였을까? 이 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최효경 님을 온라인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왔다. [배경내]


[개굴] 님의 말 : 반가워요^^
[효경] 님의 말 :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개굴] 님의 말 : 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앞이 캄캄했었는데 홀가분해요”

[개굴] 님의 말 : 교육위원회에서 학교 유지를 결정했다는 소식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효경] 님의 말 : 홀가분했다고 할까...
[개굴] 님의 말 : 이번 일 겪으면서 마음 부담이 컸나봐요?
[효경] 님의 말 : 네. 전교 부회장이 된 게 여름방학 끝난 직후였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생회 회의 한번 못한 시기에 일이 터지는 바람에 처음엔 정말 앞이 캄캄했어요.
[개굴] 님의 말 : 끄덕끄덕
[효경] 님의 말 : 뭐랄까... 주변에 도움 청할 곳이 마땅치 않아 혼자 찾아보는 것도 힘들었고, 선생님들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웠죠. 다행히 저희 학생회장의 친구가 청소년 인권단체 회원이라 그 친구 통해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도 알게 되고 그랬지요.
[개굴] 님의 말 : 다행히 일이 잘 해결돼서 큰 짐을 덜었겠군요?
[효경] 님의 말 : 한 것도 없는 걸요, 뭘. 이것 하자 저것 하자 모여서 말만 하다가 어느새 일이 끝나버렸어요. 선생님들이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활동을 하셨더라구요.
[개굴] 님의 말 : 그랬구나... 다른 학생들은?
[효경] 님의 말 :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무덤덤한 아이들 반반이랄까... 특히 이번 학기에 들어온 1학년아이들은 정말 기뻐했어요.
[개굴] 님의 말 : 그러게;; 1학년들은 이제 막 학교 들어와 완전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던 거니까 더 기뻤겠죠.

“‘희망의 집’을 갑자기 들이닥쳐 부수겠다니...”

[개굴] 님의 말 : 처음 서울시교육청에서 폐교 통보를 해왔을 때 어떤 마음이었어요?
[효경] 님의 말 : 처음 학교 입학할 때는 몰랐는데요, 5개월쯤 다니고 나니까 주변인들의 시선이 어떤지 대충 알 수 있더라구요. 공고다, 머리 나쁜, 질 나쁜 아이들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 중학교 때 공부 못했던 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도 참 많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착한 아이들도 많아요. 단지 중학교 때 공부하는 걸 좀 싫어했을 뿐이지 담배나 술 같은 거 손도 못 대본 아이들도 태반이구요. 어떻게 보면, 우리에겐 ‘희망의 집’인데 갑자기 들이닥쳐 부순다니 반대 안 할 수가 없죠!
[개굴] 님의 말 : 완전 공감!! 게다가 마땅한 근거도 없이 그러니까... 아까 주변인들이 공고생을 보는 시선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그걸 느낀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요?
[효경] 님의 말 :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제가 학교 주변에 있는 슈퍼나 가게를 안 가게 된 게 1학년 때였을 거예요. 우리 학교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빨리 나가라’며 째려보시거나 깔보시는 눈빛을 느꼈던 것뿐이죠.
[개굴] 님의 말 : 학교 주변 슈퍼에도 안 간다니 좀 놀랍네요_-))

서울시교육청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폐교 관련 의견들

▲ 서울시교육청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폐교 관련 의견들



“우리 인권이 집값 욕심 때문에 위협받은 거죠”

[개굴] 님의 말 : 이번에 남산타운 주민들이 동호공고 없애고 난 자리에 초등학교 들어오는 걸 알면서도 찬성했잖아요? 그런 행동을 보면서 분노 같은 게 일었을 것 같은데...
[효경] 님의 말 : 처음엔 주민분들이 별 생각 없이 초등학교 필요하니까 그냥 좋다 좋다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거참... 우리 학교에서 교육위원회 회의 열린 날, 남산타운 주민분들이 학교 앞에 오셔서 하시는 얘기를 직접 들었거든요. ‘우리는 초등학교를 세워달라고 했을 뿐이다. 동호공고를 폐교시키고 만든다는 건 알았지만,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세워준다 길래 찬성한 거다.’ 그날 저희 학부모 대표로 오신 분들 중 한 분이 쓰러지셔서 제가 교문 밖으로 구급차 마중을 나갔다 그 얘기를 들었어요. 왜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우리도 똑같은 사람인데... 그런 생각이 들대요.
[개굴] 님의 말 : 어린이들이 가까운 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고가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하는 건 제 자식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심이죠. 누구에게는 이참에 꼴 보기 싫었던 공고 없애고 땅값도 올리겠다는 속셈도 있었을 테고...
[효경] 님의 말 : 학교 다닌 지 1년 반이 지나가는데요, 사실 아침마다 어린이들이 학교 가느라 멀리 걸어가거나, 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그건 아파트 지을 때 편법을 써서 초등학교를 안 세운 건설업체 잘못이지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요? 저희가 양보해서 저희 운동장을 없애면서까지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짓는 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는데, 공고학생들과 같은 곳에 있을 순 없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참 이기적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개굴] 님의 말 : _-))
[효경] 님의 말 : 순수하게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방패 뒤에서 물질적 이득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음... 뭐라고 해야 할지... 말재주가 없어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네요.ㅎ
[개굴] 님의 말 : 아니어요;; 지금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표현된 걸요^^ 남산타운이면 꽤나 비싼 아파트잖아요. 그 동네에선 최고위층들이 사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잘사는 사람들이 실업계 학생들 인권은 나 몰라라 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구나, 이런 불평등이 말이 되나...
[효경] 님의 말 : 그죠.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워야 하는 학생들의 인권이 집값을 높이려는 이기심 때문에 위협 받았다는 게... 우리 사회가 이렇구나, 내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게 다 환상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업계 대하는 교육청 태도도 문제에요”

[개굴] 님의 말 : 교육청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애초 남산타운 주민들 민원이 들어왔을 때, 동호공고를 없애고 초등학교를 세우겠다고 생각한 게 잘 사는 사람 편만 든 거잖아요?
[효경] 님의 말 : 선생님들이랑 학부모님들이 교육청 방문했을 때 찍은 동영상 보면서 어이가 없더라구요. 그 선생님들은 교육청에서 배정을 하는 거잖아요? 근데 자기 식구가 찾아왔는데 셔터 내리고 막는다는 게, 시위도 아니고 이야기하러 찾아간 건데...
[개굴] 님의 말 : 동영상 보니까 한 학부모님이 그러시대요. 우리가 실업계 학부모라서 교육청이 이런 취급을 하는 것 아니냐고... 이번 일 겪기 전에도 실업계에 대한 교육당국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나요?
[효경] 님의 말 : 확실히 지원이 부족한 건 맞아요. 인문계와 실업계는 시설에서부터 차이가 나니깐... 저희는 아직 인두기를 사용해서 기판에 납땜 하는 작업을 하는데요, 끝이 다 뭉개진 인두기를 몇 년째 쓰고 있어요. 사실 여름에 인두기로 납땜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굉장히 더운데, 선풍기가 딱 2대뿐이에요.
[개굴] 님의 말 : 헉;; 엄청 덥겠다~
[효경] 님의 말 : 저희 학교는 좋은 학교 만들기라는 지원금이 들어오는데 그 정도니 말 다했죠. 그만큼 환경이 열악하다는 얘기에요. 인문계에 비해 지원도 부족하고...

지난 9월 14일 서울시교육위원회 위원들의 학교 방문을 앞두고 동호공고 학부모들이 폐교 반대 시위에 나섰다. [출처] <교육희망>

▲ 지난 9월 14일 서울시교육위원회 위원들의 학교 방문을 앞두고 동호공고 학부모들이 폐교 반대 시위에 나섰다. [출처] <교육희망>



“학생들의 적극적 활동 부족해 아쉬워요.”

[개굴] 님의 말 : 이번 일 겪으면서 학생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었나요?
[효경] 님의 말 : UCC랑 홍보물 제작, 그리고 서울에 있는 공고들 돌아다니면서 서명운동을 하려고 했었는데....
[개굴] 님의 말 : 우와~ 멋진데요?
[효경] 님의 말 : 그런데 하나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어요-_-
[개굴] 님의 말 :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학생들 서명은 받았던데?
[효경] 님의 말 : 그건 학생회 중심으로 한 게 아니라, 1학년에 신설된 방송영상과 아이들이 먼저 시작해서 전교생이 참여한 거예요.
[개굴] 님의 말 : 1학년인데 발 빠르게 움직였네요^^ 짝짝짝~
[효경] 님의 말 :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아이들이니까 다른 학년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 못했을 때 벌써 움직이더라구요. 서명 받는 거 도우면서 엄청 미안해서 더 해보려고 했었는데...
[개굴] 님의 말 : 서울시 교육위원회 회의 열리던 날 학생회장이 호소문도 들고 갔던데 교육위원들이 안 받더군요. 쳇;;
[효경] 님의 말 : 학생회장이 직접 호소문을 써서 발언권 얻어 읽으려고 했었는데, 말도 없이 회의를 그냥 끝내버리더라구요. 소리 지르면서 우리 말 좀 들어달라고 했는데, 한두 분씩 회의장을 빠져나가대요. 놀라서 달려가서 우리 호소문 받아달라고 했는데 안 받아주시더라구요. 결국 그 옆에 계시던 분이 받아가셨지만 교육위원들한테 전해졌는지 모르겠어요.
[개굴] 님의 말 : 쩝... 저도 교육위원회 회의 결과 관심있게 지켜봤는데, 폐교 안하기로 했다는 소식 듣고 다행이다~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죠. 근데 한편으론 학생 당사자들의 활동이 크게 눈에 안 보여서 조금 아쉽더라구요.
[효경] 님의 말 : 학생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이 터져서 곧바로 대응을 잘 못하겠더라구요.
[개굴] 님의 말 : 그렇긴 하죠. 워낙에 큰일이고 급박하게 일이 굴러가기도 했고 이런 일 대응해본 경험도 없었을 테니까...
[효경] 님의 말 : 선생님들도 일이 잘 풀릴 것 같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그러시기도 했어요. 처음엔 선생님들이 학생회 소집하는 걸 반대하시는 걸 보고 화가 났었는데, 그땐 이미 선생님들이 교육청 다녀오신 뒤고 이곳저곳에서 많이 도와주셨던 때라... 선생님들은 폐교 건이 물 건너갔다고 이미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개굴] 님의 말 : 그렇긴 해도 이번에 실업계 학생들이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면 실업계 학생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편견도 많이 깨졌겠다 싶긴 해요_-))
[효경] 님의 말 : 그 점은 저도 굉장히 아쉬워요, 그렇지만 이야기가 나온 지 한 달 만에 일이 끝나버리니까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알다시피 저희는 학생이고 시간도 많지 않으니까 주말에 한 번 모이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개굴] 맞아요. 그런 사정 알면서도 욕심이 생기네요ㅎ 그래도 이번 일이 잘 해결돼서 다른 실업계 학생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아요.
[효경] 님의 말 : 네. 같은 실업계 다니는 친구들이 인문계 학생들에게 열등감 느끼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몫을 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당당하게 사회에서 한 몫을 하면 되는 거니까.
[개굴] 님의 말 : 그렇게 되려면 사회가 실업계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
[효경] 님의 말 : 저희가 잘 하면 편견이야 차차 없어지겠죠. 그렇더라도 실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은 정말 절실하다 생각해요. 너희들이 잘못됐다, 너희들이 잘해라 하기 전에, 같은 대우를 해주면 그만큼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우리도 다 같은 학생이니까요.

[개굴] 님의 말 :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효경] 님의 말 : 아니에요. 말재주가 없어서 이상한 말만 늘어놓은 거 같아 죄송한 걸요ㅎ.
[개굴] 님의 말 : 별 말씀을... 얘기 나눠서 좋았어요^^ 저희 집이 동호공고 바로 근처인데 조만간 밥 한 끼 살게요.
[효경] 님의 말 : 아~ 그럼 나중에 꼭 전화주세요 +_+ㅎ
[개굴] 님의 말 : 넹~ 꼭 연락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