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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의 인권이야기] 학생 인권이 선 자리

지난 8월 18일, 내가 맡고 있는 학교 신문부 아이들 몇 명과 함께 대구로 갔다. 그날은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가 주관한 청소년 인권투어 ‘파란만장’의 대구 일정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행진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 행진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약속한 대구 동성로에 갔을 때 열댓 명의 사람들이 이미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고, 나와 함께 간 아이들도 한 시간 반가량 캠페인을 거들었다. 별로 힘들지 않았고 시민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는 행진단과 대구 지역 청소년들, 활동가들이 모여 간담회를 했다. 한구석에 자리 잡고 앉은 우리 학교 아이들은 골똘한 표정으로 그 이야기들을 경청했고, 몇 마디 거들기도 했다. 나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행진단원들은 연일 이어진 일정들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자기 또래 청소년들이 행동하고 발언하는 모습에 신선한 자극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사비(?)를 들여가며 아이들을 대구에 데려간 내 의도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자위했다. 침묵과 굴종이 이미 내면화된 아이들에게 ‘행동’하는 또래들을 직접 겪어보는 것은 무엇보다 뜻 깊은 체험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 캠페인 자리에서 다가온 복잡한 상념들

그러나 나는 행사 시간 내내 복잡한 상념들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캠페인이 지나치는 시민들, 또래 아이들에게 ‘진기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어이쿠, 용감하기도 하지….’ 하는 시선들, ‘고생은 한다만, 잘 될까’ 하는 시선들, 혹은 ‘난 니들 때보다 더한 것도 겪었어’ 하는 반응들에 마주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캠페인을 통해 호소하는 ‘현실’을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따져보면 그 행사는 ‘용감무쌍한 아이들의 별난 퍼포먼스’로 여겨질지언정, 실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들이 당해왔고 자기 2세들에게 여전히 대물림된 고통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마땅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불편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학교 안팎에서 선생 대접을 받으며 산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내 사는 모양새에 비하자면 과분한 대접이라 늘 느낀다. 그러나 내가 정작 아이들의 삶에서 가장 긴요한 문제에는 무엇을 하고 있나 생각하면 늘 켕기고 객쩍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부끄러움, 죄스러움마저도 각질화 되어가고, 조금씩 뻔뻔스러워지는 나를 느낀다.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이 끝난 뒤에는 당연히 자기 시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야간자율학습 폐지). 아이들은 제 몸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또 표현할 권리가 있다(두발제한 철폐). 그리고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체벌 금지). 이 사회에 사려 깊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이 당연한 권리는 늘 뒷전으로 밀린다. 이것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함부로 유린당해왔고, 이제는 인이 배겼다. 학생 인권에 관한 한 이 땅은 파시스트들의 나라다.

학교 현장에서 나는 늘 단일한 다수 교사들의 입장과 아이들의 요구 속에서 애매한 자리에 서 있다.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무슨 무슨 말을 하며 열린 교사인 척을 하지만 교무실에서는 대개 중과부적일 따름이다. 그래서 이 일을 뜻있는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 같이’ 풀어가자는 것이다. 전교조도 있고, 학부모단체도 있고, 시민단체는 또 얼마나 많은가.


교사와 학부모는 무얼 하고 있을까

그런데, 너무 부끄러워서 그랬을까, 그날 내가 함께 했던 대구 일정에 얼굴을 내민 ‘현직 교사’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파란만장’ 인권투어는 그래도 전교조 각 지부가 공동주최하거나 후원하는 행사로 알고 있었다. 조직적 참여가 어렵다고는 해도, 전교조가 이미 ‘아이들 살리기 운동’을 결의한 마당에 어느 정도 자발적인 참여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소한 대구 일정에서 현직 교사는 아무도 없었다(다른 지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행사 시간 내내 불편하고 짜증스러웠다. 그 많은 교사들, 전교조 교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지난 5월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전교조 창립기념 전국교사대회가 생각난다. 우리 밀양지회에서도 전세버스 1대를 빌려 서울로 올라갔다. 전국에서 6천명이 넘는 교사가 모였다. 그날 마지막 순서는 ‘아이들 살리기’ 운동을 결의하는 상징의식이었다. 체육관 위쪽 여러 곳에서 긴 휘장이 아래로 내려가고, 위원장부터 모든 조합원들이 ‘우리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나설 것’을 결의하면서 가슴에 배지를 달았다. 나는 지금도 그 배지를 내 가방에 달고 다닌다.

그간 안팎으로 전교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내가 보기에 대체로 그 비판들은 공정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전교조도 ‘아이들의 삶과 직접 관련되는 일에서 무어든 해야 한다’는 자기반성은 이루어진 것 같았고, 그날 상징의식을 통해 표면화된 ‘아이들 살리기 운동’은 좀 뒤늦은 감은 있지만 좋은 징조라 생각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이나 ‘아이들 살리기운동’ 선포식 따위의 상층 행사 말고 실체가 있는 ‘사업’은 내가 보기에 없었던 것 같다. 상반기 내내 본부-지부 사업으로 처리했던 것은 성과급 반납 서명과 반납 조직화, 부교재 가격 인하 서명운동 같은 것들이었다. 최근, 하반기 사업계획을 다루는 전국대의원대회를 했지만, ‘아이들 살리기 운동’을 명목상으로만 설정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프로그램은 없어보였다. 아마 이렇게 지내다가 또 12월쯤에 있을 위원장 선거 준비들을 할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교육 현장의 폭력과 억압은 대물림되는 것 같다. 과연 전교조는 학생 인권을 위해 안팎에 쳐진 그 많은 난관들과 부딪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일까. 9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데,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두발 규제, 체벌, 이런 문제에서 아이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턱없이 왜곡된 학교 안팎의 논쟁구도에 맞서 의미 있는 공론의 장을 열 수 있는 역량은 과연 없는 것일까. ‘아이들 살리기 운동’을 한다고 그냥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 뿐, 교사들은 이런 소중한 자리에 얼굴 내비치는 것도 귀찮아한다.

이 나라에서 ‘부모’라는 존재들은 모두 제 자식을 세상 누구보다 아끼는 것으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인데, 정작 제 자식과 그 친구들이 12년간의 학교 교육에서 받는 그 모욕적인 억압과 학대에 대해 왜 이토록 무심한 것일까. 그 많은 학부모단체들은 지금 입시제도나 교원평가 같은 문제에는 뻔질나게 방송카메라 앞에 얼굴을 내비치는데 학생 인권 문제에는 왜 행동하지 않는 것일까? 아마 학부모단체 활동가의 자녀들은 다들 좋은 학교에 다녀서, 인권 문제가 그들한테는 ‘잘 모르는’ 일인가 보다.

그래서일까, 전교조와 학부모단체들, 교육시민단체들이 맨 날 주장하는 이야기, 교육공공성이 어떻고, 입시 제도가 어떻고, 대학평준화가 어떻고 하는 소리들은 다 공염불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교육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회에 자리 잡아 가는 이 일련의 의제들에 자꾸 냉소하게 된다. 학교 교육은 여전히 ‘집단가학체제’ 그 자체이고, 이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폭력’은 지금도 대물림되고 있다. ‘어른들’이 도와주지 않으니 아이들이 그 무더운 날에 전국을 돌며 호소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수에게 ‘진기한 구경거리’로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이 나라 교사와 학부모들은 별로 부끄러운지를 모른다. 그들의 무심함과 안일함이 빚어낸 이 땅 학생 인권의 현실이 너무나 싫다.
덧붙임

이계삼 님은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