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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의 인권이야기] 인권영화제,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유명 영화제들의 독점과 배제 속에서 맞게 될 2007 인권영화제

올해 인권영화제 상영작 선정이 한창일 때 베를린에서 메일이 날아왔다. 쿠르드족의 아픔을 담은 영화를 만든 제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인권영화제에 상영하고 싶다는 것. 제작자가 보내 온 영화는 쿠르드족의 뒤틀린 삶을 긴 호흡으로 그려내고 있었고 인권영화제는 상영을 결정했다. 영화제의 상영결정 메일에 대해 제작자는 ‘긴 호흡’으로 며칠을 끌더니 끝내 씁쓸한 답변을 보내왔다. 부산영화제에서 같은 작품을 초청했는데 부산영화제 측에서 ‘동아시아 프리미어(최초 상영)’를 요청했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인권영화제에선 상영할 수 없다는 것.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한 번씩 경험하는 답답한 사정이다. 국제영화제들의 ‘프리미어’ 관행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유명 감독과 배우의 최신작을 포함해 얼마나 많은 작품을 프리미어로 상영하는지는 국제영화제의 권위와 지명도, 대중적 인기를 높이는 척도라고 한다. 축제를 더욱 흥미롭게 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배타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원칙은 ‘문화 향유의 기회’를 박탈할 수 있는 인권의 함정이 되기도 한다.

인권영화제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영화산업과의 절친한 관계 속에서만 존재 가능한 유명짜한 국제영화제들과 경쟁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문제는 영화제를 통해서나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독립영화’조차 프리미어 때문에 관객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하고 관객 역시 접근 기회를 차단당한다는 점이다. 수백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국제영화제는 상업영화 뿐 아니라 다양한 독립영화도 상영목록에 포함시키고 있다. 국내에서 규모 있는 국제영화제들이 앞다투어 만들어지면서 프리미어 경쟁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부산에서 상영한 작품은 OO영화제에서는 상영하지 않는다는 억지스러운 원칙을 내세우는가 하면, 몇 해 전 시작된 교육방송의 다큐멘터리영화제까지 프리미어를 철칙으로 내세우고 있어, 독립영화의 보급과 확산을 오히려 저해시키고 있다. ‘레드카펫’을 밟는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국제영화제 한 귀퉁이에 스크린 하나 얻는 것은 국제영화제에 상영되는 ‘영예’가 아니라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대부분의 영화는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안정적인 구조에서 배제되어 있다. 극장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잠식되어 있고, 방송은 철저히 광고 수익을 위해 편성된다. 상업영화의 문법을 차용하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산업화된 상영 구조 속에서 소외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산업이 배척한다고 해서 관객들마저 이러한 영화를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볼거리를 초 단위로 제공하는 상업영화에 대중의 욕망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객이 독립영화를 한결같이 외면하는 건 아니다. 인권영화제가 10년 넘게 관객을 불러 모았고, 인권영화의 감수성으로 세례 받은 관객들이 감독으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것이 소박한 증거이다.

많은 국제영화제들이 영화다양성을 소중히 여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제를 통해서 이를 실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유명한 국제영화제들은 수십개국에서 수백편의 영화가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고 활발한 인적 교류를 통해 제 역할은 분명 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 원칙을 독립영화에까지 적용하면서 영화다양성을 실현한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감독을 초청하고, 잠자리를 제공하고, 한두번 상영 기회를 주면서 다른 (영화제)상영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욕심스런 독점일 뿐이다. 상업영화에게 프리미어는 몸값을 올려주는 ‘간택’일 수 있지만, 독립영화에게 프리미어는 불공정한 ‘포기각서’와 같다.

올 인권영화제가 다음달 18일 열두번째 개막을 맞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료 상영의 원칙을 지킨다. 지난 10여년 동안 영화제를 치루면서 이 원칙에 대한 고민도 많이 따랐다. 누구에게나 인권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영화제의 문턱을 최대한 낮춰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입장료를 받지 않는 정신이 때로는 왜곡되기도 했다. ‘재미없는’ 영화, 돈을 받을 만한 ‘경쟁력 없는’ 영화가 아니냐는 오명도 간혹 있었지만 제일 힘들었던 건 ‘무료 상영’을 불편해 하는 반응이었다. 물질적 재화뿐 아니라 문화적 향유 역시 돈으로 교환되는 세상에서 인권영화제의 무료상영은 낯설고 불편한 것이기도 했다. 프리미어 원칙 역시 그렇다. 경쟁력 있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화제의 권위와 지명도, 군중의 구미를 당기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점과 독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배타적 원칙은 제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기회의 향유’를 박탈하는 횡포에 다름 아니다. 익숙하고 당연한 관행 속에 숨겨진 독점과 배제의 독초를 제거하기 위해 인권영화제는 또다시 숨고르기를 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