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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파서 너무 아파서 일어서다

- 『한 뙈기의 땅』(엘리자베스 레어드 지음, 정병선 옮김, 밝은세상)을 읽고

아프다
그래서 아프다

생각해도 아프고
읽어도 아프고
보아도 아프고

세상에 어디 아픈 것이 팔레스타인뿐이겠냐만
그래도 아픈 것은 아파서
때론 마주 하지 못할 때조차 있으니


처음 팔레스타인연대운동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신문에 난 팔레스타인 관련 사진 한 장을 보고서는 ‘아! 이건 뭔가 아니다. 뭔가 해 봐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이 ‘업계’(?)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활동을 하려고 하니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도 찾을 수 없었고 관련 자료도 많지 않아 활동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몇 년 흐르면서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활동하는 단체나 사람이 많이 늘어났죠. ‘팔레스타인평화연대’라는 소중한 ‘무리’들도 만나게 되었고요. 팔레스타인연대운동을 해오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여전히 팔레스타인 관련 이야기를 듣거나 보거나 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거예요. 물론 사람들한테 말할 때는 더 그러죠.

팔레스타인이라고 만날 죽고 울기만 하겠어요?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사랑도 하고, 웃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러지요.

맞는 말이에요. 언론에는 만날 죽고 싸우는 것만 나와서 그렇지 1년 365일 그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1년 365일 죽고 싸우지는 못 하더라도 하루하루가 투쟁이고 눈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나가는 버스에 올라타 검문을 하는 이스라엘 군인

▲ 지나가는 버스에 올라타 검문을 하는 이스라엘 군인


카림은 팔레스타인 남자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감시병 하나가 총을 휘두르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팔레스타인 남자들은 불안에 떨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엄마, 뭐하는 거예요? 왜 아빠가 옷을 벗어요?” 파라가 입에 넣고 빨던 엄지손가락을 빼며 물었다.…“짐승 같은 놈들! 가족들과 낯선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려는 거야. 나쁜 놈들, 힘없는 노인에게까지 옷을 벗게 하다니.…” - 57쪽, 58쪽

지금은 한국에 잘 없지만 예전엔 ‘불심검문’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도 불심검문에 걸려 아무 까닭 없이 하루를 경찰에 붙잡혀있던 적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젊은 놈’이라는 이유였죠. 그런데 팔레스타인은 이런 식의 검문과 괴롭힘이 일상입니다. 도로 곳곳에 수백 개의 검문소를 설치해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디에 가냐?’ ‘왜 가냐?’고 물어보고, 신분증을 검사하고, 짐을 뒤지고, 차에서 내리게 해서 모욕을 주고, 수틀리면 못 지나가게 하고. 이런 일들은 당장에 전투가 벌어지고 사람이 죽고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쉽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마을

▲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마을


“내년에 올리브를 먹을 수 있을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스라엘 놈들은 우리를 아주 좋아하니깐 내년에 우리 대신 올리브를 직접 수확해서 팔 거예요. 물론 아주 비싼 가격이겠지만요.”…“될 수 있으면 많이 가져가거라.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누가 알겠니? 이미 올리브 농장 일부를 저들에게 빼앗겼고, 내년에는 우리가 소유한 모든 농장을 전부 앗아갈지도 모르니 많이 가져가야해.” 할머니가 라미아에게 포도 상자를 안기며 한 말이었다. - 80쪽

팔레스타인에는 정말 올리브가 많습니다.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것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올리브나 레몬나무들이 많이 있지요. 올리브로 기름을 짜서 먹기도 하고, 나무를 깎아서 장식품을 만들기도 하고, 장아찌처럼 먹기도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수난이 올리브나무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땅을 몰수하면서 올리브나무를 뺏어가고, 장벽을 쌓는다며 올리브나무를 베어버리고, 실컷 올리브 농사를 지으면 물건을 이동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아이

▲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아이


이 책은 카림이라는 한 팔레스타인 아이의 눈에 비친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눈물과 분노와 두려움과 웃음이 함께 있는 생활이지요. 카림은 친구들과 함께 “한 뙈기의 땅”을 놀이터로 일굽니다. 쓰레기 더미 속에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국 이 한 뙈기의 땅도 이스라엘의 탱크가 짓뭉개 버리지요. 숨을 곳조차, 숨 쉴 곳조차 남기지 않는 점령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삼아 남아야한다는 의지를 키웁니다. 죽음이 드리워진 곳에서 인간은 더욱 강인한 존재로 태어나는가 봅니다.

다시 정돈해야 할 축구장이 있었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낙담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사태를 순응하는 자세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생각이었다.…그리고 신나게 축구를 즐길 것이다. “우린 잘 해낼 수 있어.” 카림은 메뚜기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끝내 살아남을 거야.”

덧붙임

미니 님은 '경계를넘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로서 이 기사는 '경계를넘어'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같은 기사를 '경계를넘어' 인터넷 홈페이지(www.ifis.or.kr)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