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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 대추리 상공에서 울리던 ‘애국가’의 정체

지난 5월 14일,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가 군인과 경찰에 의해 점령된 지 열흘이 지난 그날 범국민대회가 대추리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대추리, 도두리 일대의 좁은 도로에는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도 남기지 않고 다닥다닥 전경버스들이 붙어 있었다. 들판 곳곳에도 전경들이 깔려 있고 외부에서는 기자들만, 그것도 열 번 가량의 검문을 통과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삼엄하기만 했던 그날 오전, 갑자기 상공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경찰 마크를 선명하게 박은 헬기가 상공에서 애국가를 틀어대고 있었다.

대추리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는 헬기들. <사진 출처: 평화바람>

▲ 대추리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는 헬기들. <사진 출처: 평화바람>



애국가! 요즘 월드컵 철이 다가오니 매일 듣기 싫어도 듣는 게 애국가지만, 그날 대추리 상공에서 울려 퍼지던 애국가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그 전날에는 군 헬기가 마을 일대를 돌면서 삐라를 뿌렸다. ‘5067 부대장’ 이름으로 살포된 그 삐라의 내용이야 철조망을 비롯해 군사보호시설구역을 침범하면 군형법으로 처벌된다는 내용 정도였지만, 그 삐라 살포행위와 연결되어 ‘애국가’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삐라와 애국가 - “너는 국민이더냐”

문정현 신부님은 이런 행위들을 두고 ‘저질 코미디’라고 일축하셨지만, 5월 4일 이후 대추리, 도두리 마을과 그 들녘 일대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그들의 파괴행위에 비추어보면 이런 선무(宣撫)공작은 분명 적대적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가운데 두고 어떻게 저 짓을 할 수 있을까? 그날 황새울 영화제는 경찰이 상황종료를 선언하고 전경 버스들을 모두 뺀 다음인 오후 8시 이후에나 진행될 수 있었다. 무심하게도 노을은 여전히 아름답게 지고, 둥근 보름달은 천연덕스럽게 사위를 밝히는데, 들녘에서는 군인트럭이 움직이고, 기계가 움직이고, 군인들이 불을 켜면서 농지를 파괴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생명과 평화의 땅을 파괴하기에 여념이 없는 야만의 모습들이었다.

지금 대추리와 도두리는 하루가 다르게 살풍경으로 변하고 있다. 길목마다 전경들이 지키며 불법 불심검문을 하면서 마을로 진입을 막는다. 길목마다 군인들이 쳐놓은 철조망과 언제라도 설치할 태세인 바리케이드들, 전쟁지역이나 군부대 주변에서나 볼 수 있던 모습들, 그렇게 군인과 전경들이 지키는 철조망 안에는 들에 접근할 수 없도록 너무도 많은 장애물들이 설치되고 있다. 민간인통제구역이 시작되는 ‘민통선’이 바로 거기에 있다.

예전 군에 있을 때 민통선 안쪽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개의 검문소를 거쳐야 했고, 군인들이 저녁마다 점호를 했다. 그들은 언제고 월북이라는 이적행위를 할지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국민이 아닌 것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그날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삐라를 살포하고 애국가를 튼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곳으로 오는 사람들을 국민이 아니라 ‘비국민(非國民)’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들을 비국민으로 내치고 나서는 이제와 반역행위를 멈추고 국가의 품으로 전향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을 짓밟는 국가

그들만 아는 ‘국익’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라고 명령하는 국가. 그 명령에 항거하는, 굴종을 거부하는 국민들을 향해 저질러지고 있는 야만적 국가폭력. 마치 대일본제국 천황을 위해 기꺼이 목숨마저 내어놓고 성전에 뛰어들라 요구했던, 이를 거부하는 비국민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형벌로 응징했던, 또는 자신만의 ‘위대한 영도’를 거부하는 비국민들을 향해 독재자들이 거침없이 총칼을 겨누었던 그런 적대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살고 있는 그 마을에 5월 4일 이후 벌어지는 국가의 폭력을, 이 폭력을 더욱 거세게 몰아치라고 주문하는 조중동 친미사대 언론들의 부추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황새울 들녘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이 진압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평화바람>

▲ 황새울 들녘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이 진압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평화바람>



지금 국가는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을, 그들이 강요하는 ‘국민됨’을 거부하는 ‘사람’을 거부하고 있다. 그 국가는 오로지 한쪽 소수만을 위한, 그러므로 대다수 ‘사람’에게는 생존의 문제까지 연결되는 피해임이 분명한 ‘국익’을 위해 기꺼이 복종하는 국민을 원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 대추리와 도두리에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은 국가를 향해 묻는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무엇이냐고,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냐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반대한다고, 땅 파먹고 사는 농민이라고 이렇게 인권을 무시해도 되느냐고.

국가가 저지르는 폭력, 국가의 범죄는 다만 대추분교를 파괴하고 농토를 짓밟는 것만이 아니다. 폭력은 쉽게 눈에 보이는 폭력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추분교를 부수면서 주민들의 추억과 꿈을 함께 부수었고, 들에 자라나는 보리와 이제 막 싹을 틔운 벼를 짓밟으면서 농사에 대한 희망을 짓밟았다. 그것도 모자라 육지 위에 섬으로 고립시키려고 안간힘을 다 쓴다.


그 ‘섬’으로 길을 내자

그러기에 더욱 그 ‘섬’에 가야 한다. 저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섬이 아니라 원래대로 모든 길과 길로 이어지는, ‘사람’ 사는 곳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발걸음이 너무 늦어서는 안 된다. 모내기철이 모두 끝나기 전에 그곳의 철조망을 거두어야 한다. 온몸 철조망에 찢기는 한이 있어도, 군인들에게 포박당하고 두들겨 맞는 일이 있어도 철조망을 거두어야 한다. 평화롭게 농사짓는 땅을 빼앗아 미군의 침략전쟁기지로 내어주는 저 전쟁광들의 놀음, 자의적으로 국민을 비국민으로 돌려세우고 사람에 대한 전쟁을 서슴지 않는 국가의 폭력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 이미 내 마음에는 반란이 시작되었다.
덧붙임

박래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