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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복사되고 싶은 건 난방 버스보다는 아무래도 평등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6월 3일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시민들이 발생했습니다. 사회가 그토록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러온 선거에 말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분노가 빠르게 퍼져나갔고, 저 역시 ‘이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공감했습니다.

밤을 새면서 소식을 계속 살폈습니다. 초기 현장 사람들은 ‘시위대’라는 호칭을 거부하며 ‘재선거’ 구호와 태극기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성조기와 ‘STOP THE STEAL’, ‘부정선거’ 구호가 힘을 얻었고,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과 ‘중국인’을 적발하겠다며 시민들을 위협하는 이들이 뒤섞였습니다. 취재진 폭행, 여성 불법촬영 범죄, 여자 핸드볼 청소년 선수단을 향한 위압적 행동, 심지어 같은 시위에 참여한 시민을 향한 추궁까지 다양한 폭력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간은 중도보수부터 극우까지 아우르는 여러 시민에게 상징적인 사건과 장소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올림픽공원에 모인 이들이 핫팩과 은박지를 배송받거나 난방 버스 같은 걸 대절하고, 지난 탄핵 광장 때 시민들을 위해 카페 선결제를 했던 연예인과 일반 시민들에게 그때와 같은 선결제와 음식 배달을 요구하고, ‘차빼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저들도 남태령이 내심 굉장히 부러웠나 보다’라는 코멘트와 함께요. 그러게요. 극우들만 모였다고 쉽게 말할 수 없지만, 올림픽공원에 모인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로 하여금 ‘한여름에 은박지를 덮게 만든’ 그 마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핫팩, 은박지, 난방 버스, 시민들의 푸드트럭/생리대 연대 같은 것들은 남태령을 가득 채웠던 돌봄과 연대의 세계관 속에서 피어난 몇몇 상징 중 일부입니다. 그렇지만 상징만 따로 복제될 뿐, 정작 그 상징을 가능케 했던 무언가들은 내동댕이쳐진 올림픽공원을 멀리서 보며,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한 동년배 활동가는 박근혜 퇴진 집회 이후 나타난 태극기 부대를 떠올리며, 자신도 약 10여 년 전에 비슷하게 복잡한 심정을 느낀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곰곰히 남태령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5월에 뜨끈뜨끈한 신작 영화 <남태령> 시사회를 다녀온 터라, 남태령을 다시 곱씹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스스로를 논바이너리라고 소개했을 때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라는 답이 돌아오는 광장, 중국인 부모를 둔 이주 배경 청년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광장. 성소수자, 청소년, 도시의 여성노동자, 전세사기 피해자, 플랫폼 노동자, 농민의 손녀, 생일카페 가는 길이었던 덕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 무엇이든 꺼내놓아도 아무 문제 없는 광장. 여성노동자가 농민의 권리를 말하고, 전세사기 피해자가 여성의 권리를 말하고, 덕후가 민주주의를 말하는 광장.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함께 확인하던 광장. 남태령은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남태령을 미화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날의 기억이 박물관에 유물처럼 갇히길 원하지 않아서라고 해요. 세상 곳곳에 다시 구현되길 바라는 어떤 것들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건 바로 그 밤을 가득 채웠던 ‘평등’의 감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태령과 올림픽공원, 두 광장의 차이는 결국 사람들을 움직인 동력과 그들이 그리는 사회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광장에 대한 갈증과 부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책임을 지게 하고픈 마음 어딘가에는 분명 가닿을 틈이 있을 텐데요. 윤석열 퇴진 광장이나 남태령에 함께 하지 않았던 이들의 온/오프라인 올림픽공원 참여가 두드러지는 게 너무 신기하다면서, 평소에 정치적인 목소리를 전혀 내지 않던 이들이 말을 꺼내고 있다는 이야기들도 생각나네요. ‘투표용지 부족을 둘러싼 분노, 의심’과 ‘동료 시민들을 향한 의심과 색출, 혐오 선동에 거리낌 없는 극우 편향적 세계관’ 사이의 틈을 더 벌리기 위한 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선관위가 책임져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고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 역시 명확한 상황입니다. 그 가운데 몇몇 학생 단위가 장애인의 참정권을 함께 되묻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투표할 권리를 끊임없이 침해받아 온 이들의 권리 투쟁에 사회적 지지를 모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 민주주의는 투표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텐데요. 서로의 해방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 역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일상의 민주주의가 가닿을 수 있도록 여러 조직적 실천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사랑방 후원인분들께 다큐멘터리 <남태령> 관람을 추천합니다☆ 난방 버스만이 아니라, 남태령에 모인 이들이 함께 힘 모아 구현하고자 했던 평등이 세상 곳곳에 복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