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 코스피가 첫 5000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곳곳에서는 그 일등 공신에 ‘K-반도체’가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보며 심란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정부의 반도체 산업 확장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쓰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사랑방은 반도체 산업을 단순한 ‘성장 산업’으로 보지 않는다.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부담을 노동자와 지역, 생태에 떠밀어왔던 산업이기 때문이다. 국가기밀이라는 이름 아래 작업환경의 위험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고, 그 안에서 노동자들은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된 채로 병들고 목숨을 잃어야 했던 시간이 이미 오래간 이어져왔다. 반도체 산업이 노동자의 생명만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전력과 물을 소모하고 우리 생태를 파괴시키면서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도 선명히 밝혀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성장 서사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희생이 강요되는 구조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사랑방은 반도체특별법에도 주목하기도 했다. 반도체특별법은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혼란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여야가 ‘민생법안’이라며 들고 나왔던 법안이다. 그러나 기업의 산업 경쟁력을 위한 특혜만 담긴 그 법안에 민생은 없었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공적 자원을 반도체 대기업에 집중시키며, 노동환경은 더욱 후퇴시키는 법이 ‘국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겠다는 법이었다. 반도체특별법은 지난 1월 29일, 가장 논란이었던 특별연장근로에 관한 내용만 뺀 채 국회 본회의를 끝내 통과했다.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 축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RE100 산업단지, ‘에너지 고속도로’, 각종 세제 감면과 규제 완화까지.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의 확장을 국가가 온 힘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는 거다. 이런 정책들은 기후위기와 자원 한계라는 조건 속에서 어떤 사회를 만들어낼지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속도전으로 추진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삶·생태를 위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보존하고 분배할지, 반도체 산업을 얼마나 키울 것인지에 관한 질문은 애당초 논의의 장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위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반도체 산단의 ‘지역 이전’을 새로운 해법처럼 제시하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산단을 지역으로 분산하면 ‘균형발전’이 이뤄지고 송전탑 갈등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 반도체 산단을 짓자는 구상도 유사한 맥락에서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는 “송전탑 가고 반도체 오라”는 현수막이 붙기도 하고, 반도체 산단 유치가 지역의 생존 전략인 것처럼 이해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반도체 산단을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지역에 짓자는 논의는 반도체 산업과 그 확장에 내재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산단의 위치만 옮기는 데 그친다. 반도체 산단이 어디에 들어서든 막대한 전력과 물이 필요하고, 그 자원을 감당하는 부담은 결국 지역주민, 농업, 생태에 집중될 것이다. 2021년 대만이 ‘최악의 가뭄’을 겪었을 때 대만 반도체 제조 기업인 TSMC의 공장에 물을 우선 공급하기 위해 주민들의 생활용수가 제한되고 농사가 중단되었던 사례는 언제 어디서나 반복될 수 있다. 특히나 지금처럼 반도체 산단 확장이 무조건적인 우선순위로 밀어붙여지는 상황은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더욱 가릴 위험이 있다.

2025년 11월, ‘반도체특별법저지공동행동’에서 진행한
반도체특별법 강행처리에 반대하는 기자회견
반도체 산업에 대한 환호와 기대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고민 위에서, 사랑방이 함께하고 있는 기후정의동맹이 ‘지역의 식민지화에 맞선, 초고압 송전탑 반대 투쟁은 정당하다.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반도체 국가산단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공동성명을 다른 사회운동 단체들과 함께 내기도 했다. 성명의 핵심은 분명하다.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지역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나 계획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저항과 투쟁은 반도체 산업의 무조건적인 확장을 ‘전제’로 한 국가 산업 정책의 결과였다. 반도체 국가산단이 계획되는 순간부터 막대한 전력과 물이 필요해지고, 그 자원을 끌어오기 위해 지역이 동원되어왔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입지가 아니라 확장 그 자체에 있다. 어디에 짓냐는 문제 이전에 확장이 정말 필요하고 가능할지의 문제를 묻지 않는 한, 갈등은 계속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뿐이다. 그런 문제의식 위에서 반도체 산단계획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서 재검토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온 반도체 산업을 단순히 멈추고 폐기하자는 게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위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현 정부는 반도체뿐 아니라 AI 산업 역시 국가 전략 산업으로 내세우며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 확장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있을 틈은 없는데, 우리가 경험하게 될 진통은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위기감이 드는 요즘이다. 어떤 산업을 왜 얼마나 확장할지, 이 성장이 과연 누구를 위한 성장이며 지속 가능한지, 이 과정에서 누가 방향타를 움켜쥐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더 크게 되어야 한다. 결국엔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할 테다.

[공동성명] 지역의 식민지화에 맞선, 초고압 송전탑 반대 투쟁은 정당하다.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반도체 국가산단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
- 2026년 1월 5일, 101개 단체 공동성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