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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참깨] 청와대를 감사청구한 이유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안다.” 나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목소리(만) 큰 자를 정당화시키는 말 같아서다. 그래서 시끄럽게 떠들기보다는 조용히 해결책을 찾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간혹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할 때가 생긴다. 큰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호구가 아님을 증명하며) 해결의 한 방법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를 포함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은 수없이 많은 종류의 칼럼, 기사, 강의, 인터뷰, 심지어는 SNS에 끄적이는 것까지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의 불통(특히 정보공개)에 대해서 비판해왔다.
다른 기관은 다 공개하는 것들을 청와대는 왜 공개하지 않느냐. 왜 법대로 하지 않고 비공개를 남발하느냐, 다른 기관은 다 공무원 이름을 공개하는데 왜 청와대는 공무원 이름이 김00이냐, 왜 전화도 안 받느냐. 너무 쪼잔한 것들까지 지적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판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갈길 간다’는 식이었다. 귀 닫은 불통 청와대는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비판하는 것 따위는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공식적으로(법적인 절차를 통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니 청와대는 우리를 가마니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했다. 공익감사청구.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3월 10일 감사원에 청와대의 정보공개처리 실태에 대해 감사청구를 했다.

모든 공공기관은 보유 및 관리하고 있는 정보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은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국민의 권리가 존중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인력배치와 시스템 구축 등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에서 정하고 있는 모든 공공기관의 의무이며, 또한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만약 공공기관이 해당 의무와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으로 정하고 있는 정보공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알 권리를 침해당하게 된다.
청와대는 이 의무를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지키지 않았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말이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첫 번째, 청와대는 공무원 이름이 비공개다. 정보공개청구를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니, 공문을 만들어보거나 받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정보공개 결정통지서는 공문으로 갈음하는데, 여기에는 기안을 하고, 결재한 담당 공무원의 이름과 연락처가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청와대의 정보공개 통지서에는 담당 공무원의 이름이 없다. 정보공개 업무담당자인 정국환 행정관과 조인근 비서관 외에는 모두 김00, 이00 정도로만 공개된다. 연락처 역시 청와대의 대표 자동응답전화밖에 공개되어 있지 않다. 업무담당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명시하고 공개하는 것은 『행정업무의 효율적 운영에 관한 규정』에도 명시된, 법으로 정해진 양식이다. 청와대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비서실 결정통지서 예<br />

▲ 대통령비서실 결정통지서 예


두 번째, 청와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비공개 사유로 끌어들인다. 청와대의 비공개 사유 중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사유는 바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7조 등에 따라 비밀 또는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비공개 사유는 법을 조금만 봐도 알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억지 비공개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17조는 ‘지정기록물’에 관한 조항으로 퇴임 대통령의 기록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기록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의 지정은 대통령의 퇴임 시기에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비공개 사유로 앞으로 몇 년 이후에나 발생할 지정기록물관리 규정을 근거로 든 것이다.

자의적 비공개 결정통지서 예<br />

▲ 자의적 비공개 결정통지서 예


세 번째, 청와대는 공개하는 정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도록 변조를 해서 공개한다. 정보공개센터는 몇 달 전 청와대에 ‘박근혜 대통령이 주고받은 선물 목록’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대통령이 받은 선물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행정박물 등으로 관리되는 공공기록이다. 공적인 역할로 받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 청구에 대해 청와대는 “공개”를 했다. 아래의 표가 공개 자료다. 하지만 보다시피 언제 누구한테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선물을 받은 국가와 선물 내용이 각각 ㄱ-ㅎ 순으로 정렬해 서로 매치가 되지 않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대통령 비서실에서 공개한 대통령 선물목록

▲ 박근혜정부 대통령 비서실에서 공개한 대통령 선물목록


정보공개 당시 공개하는 정보는 위변조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정보를 보유 및 관리하고 있는 형태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고, 취합/가공 등의 절차는 예외로 두어 판례 등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 공개정보를 위변조나 가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행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형법』 제227조에는 허위공문서 작성에 대해 엄격한 처벌조항을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대통령 비서실은 선물 목록을 공개하면서 청구인이 해당 정보를 제대로 식별하기 어렵게 변조한 것이다. 원래 이렇게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절대 아니다. 똑같은 내용을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에도 청구했었다. 그때는 이렇게도 친절하게 답변이 왔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 좋았다고 느끼긴 처음이야 ㅠㅠ)

이명박 대통령 재임 당시 대통령비서실에서 공개한 대통령 선물목록<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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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재임 당시 대통령비서실에서 공개한 대통령 선물목록



보통 이렇게 정보를 못 받게 될 때는 이의신청을 하는 것이 가장 쉽고 보편적인 방법이다. 더 나아간다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때는 비공개 사례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처리되고 만다. 행정소송 등이 주요 판례를 남긴다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으로 청와대의 불통 정보공개 태도가 개선되긴 어렵다. 그래서 굳이 다른 것도 아닌 감사청구를 하게 되었다.

정보공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3.0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을 보고 있으면 청와대가 과연 정부3.0을 실천한 의지가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정부에 실천 의지가 없으니 사람들이 실천할 수 밖에 없다. 가만히 있다가 가마니 취급을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덧붙임

정진임 님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