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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박숙경의 인권이야기] 탈시설이 필요한 이유

나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서 활동하던 2003년 11월 대형 기도원 형태의 정신요양시설인 '성실정양원'과 '은혜사랑의집'을 계기로 시설생활인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여러 사회복지생활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지난해에는 '미전환 미신고시설에 대한 민관합동실태조사'와 국가인권위 인권상황실태조사로 진행된 '양성화된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실태조사'에 참여해 전국의 크고 작은 사회복지생활시설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문제시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사회복지시설하면 떠올리는 그야말로 헌신적인 '착한 시설장'과 '종사자' 그리고 모범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탈시설 운동'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탈시설 운동'을 결심하기까지 수없이 고민과 갈등에 빠지곤 했다. '몇몇 악질적인 시설장과 문제시설을 잡기 위해 수많은 선량한 시설장과 시설 종사자들을 매도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한가?'하는 점과 '당장 갈 곳이 막연한 사람들을 두고 대안 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수많은 사회복지생활시설을 다니며 생활인을 면접하면서 나 역시 시설운영자와 가족들 그리고 전문가의 관점에서 시설문제를 바라보았음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모든 시설장이 악덕 사업자로 매도당하고 인권침해 가해자로 매도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응당 국가가 해야 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 가족조차도 버린 사람들을 돌보는 수많은 헌신적인 시설종사자와 운영자들의 공헌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착하고 헌신적인 시설장의 공을 인정하는 문제와 시설정책을 탈시설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은 분명 별개의 문제이다. 탈시설정책은 선량한 시설장을 매도하자는 것이 아닌 거주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지금의'시설보호'에서 '자립생활 지원'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탈시설운동을 '사회복지서비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사회복지시설'을 적대시하는 비전문가들의 운동으로 폄화하여 대립적 관계로 몰아가는 것은 탈시설운동의 철학과 취지를 잘못 이해했거나 또는 시설보호정책을 틈타 영리를 추구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배를 불려온 사회복지시설들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업'의 결과이다.

이는 그동안 필자가 만난 선량하고 인권감수성을 갖춘 시설장의 경우에서 확인되곤 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스스로 시설을 늘려가거나 시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이런 저런 이유로 시설에 떠밀려 입소한 사람들이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정부의 정책이 그러한 시설장의 철학과 운영방침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탈시설운동은 선량한 시설장에게 피해를 입히는 운동이 아닌 그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위 모범적인 시설에서 거주하는 생활인들 역시 하나같이 자립생활을 원하고 있었다. 일례로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시설 생활 경험에 대한 사례발표를 맡은 김 아무개 씨와 윤 아무개 씨는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스스로 시설을 선택해 들어간 경우였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입소한데다 생활인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모범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자립생활'을 목표로 수급액을 열심히 저축하고 있었다. "스스로 대소변 처리만 되어도 시설을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시설은 집단생활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잠깐 외출만 하려 해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좋을 리가 없잖아요." 신기한 사람들 대하듯 시설에서의 피해경험을 연신 물어대는 기자들의 등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당당하게 시설보호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두 사람과 그간 시설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바람은 일치하고 있었다. 가족의 부담도 아닌 자선과 시혜적 도움의 대상도 아닌 보통의 시민으로 지역에서 살수 있도록 '자립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모두의 바람이었다.

이렇듯 탈시설은 거주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척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일상에서 공동체를 일궈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이들의 꿈인 '자립생활'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할 산인 것이다.
덧붙임

박숙경 님은 사회복지시설 생활인 인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