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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 영화를 만나다] 영화노동자들 궐기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스크린 위에 흐르고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이름이 깔리자마자, 극장 안은 황급히 어둠이 걷히고 관객들은 일제히 자리를 뜬다. 필름뭉치는 녹록치 않은 노동의 결과로 새겨진 엄연한 공동의 창작물이지만, 수십명 혹은 수백명에 이르는 영화 노동자들의 존재는 그 어디에서조차 감지하기 어렵다.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등장을 기점으로 마케팅에 치중하는 제작비의 상승 곡선은 가파르고, 천정부지의 배우 출연료를 요구하는 매니지먼트사의 입김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영화노동자들의 임금 요구를 고상한 예술가론을 들먹이며 천박하다고 치부하는 예술과 노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여전하다. 영화를 향한 불타는 열정 하나만으로 배고픔과 추위를 기꺼이 잊으라고 강요하는 '배고픔의 미학'은 천만관객 시대에 돌입한 한국 영화산업의 '당당한' 자화상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아래 영화노조)의 설립이 영화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기형적인 충무로 영화제작 관행을 지우며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는 디딤돌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2001년, 저임금과 상습적인 임금체불, 불안정하고 무리한 작업 환경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던 현장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모여 스탭처우개선단체 '비둘기둥지'가 생겼다. 이는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고용 환경으로 인하여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중지를 모아나갈 기회가 전무했던 현장 영화 노동자들의 소통 저변을 넓혔다는 데에 의의가 크다. 2003년에는 촬영, 조명, 제작부, 조감독이 포함된 4부 조수연합이 설립되었고, 영화노조 설립의 주축이 된 한국영화조수연대회의가 결성되기에 이른다. 작년에는 영화인 신문고가 만들어져 부당사례고발과 법률상담 등을 지원하며 적잖은 성과를 남겼다.

지난해 10월 김영주 의원(열린우리당)이 발표한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영화노동자의 연평균 임금은 약 640만원으로 최저임금에도 못미친다. 이마저도 체불되거나 미지급당하는 경우가 48%에 이르고, 수당도 받지 못한 채 하루 13시간 이상의 초과근무가 수시로 발생한다. 노동자들의 4대 보험 가입률은 극히 낮고, 더욱이 작품별 임시 계약직으로 고용되어 계약금-중도금-잔금의 형태로 임금을 지급받는다. 영화노조의 정승권 교육선전부장은 "사전제작단계의 준비 부족으로 누수된 시간과 돈을, 제작 시간 연장 등 노동자들에게 무리한 노동을 강요함으로써 충당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비정규직 하청 도급 기간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영화 노동자들은 각 분야별 감독급의 개인과 도제식 계약을 맺기 때문에 '선생님'과 '가족'이 익숙한 영화제작현장에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 교육선전부장은 "선처를 호소하는 약자의 위치가 아니라, 최저임금 쟁취, 4대 보험 가입 등 노동자로서 응당 누려야 할 권리의 법적 보장을 위하여 단체의 노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4년이 넘는 영화노동자 조직화의 준비 끝에 영화노조는 오는 15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있다. 예술과 노동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는 인식, 각 담당 분야별 업무의 상이함 등 노조 조직화를 위하여 갈 길은 아직 험난하다. 대리 운전, 퀵서비스 등의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유난히 단명이 많은 지금의 영화 노동자들. 이제 첫발을 내딘 영화노조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활동은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