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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의학 한계 벗어난 자의적·정치적 판단"

인의협, 국과수 발표에 정면반박…고 전용철 씨 부상 당시 사진 발견

농민대회에 참석했다 경찰폭력으로 부상당해 24일 사망한 전용철 충남 보령농민회 주교면지회장의 머리 상처가 '넘어지면서 생긴 것'이라는 국과수 발표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아래 인의협)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또 전 씨가 현장에서 부상당해 옮겨지는 사진과 그를 옮겼던 사람들의 증언도 나와 진압경찰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저녁 국립과학수사연구소(소장 이원태, 아래 국과수)는 대전 유성구 중부분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진행한 부검결과를 발표했다. 국과수는 △시신의 머리 손상은 머리의 움직임이 없이 외부충격이 가해질 때 생기는 '동측충격손상'이 아니라 넘어지면서 생기는 전형적인 '대측충격손상'에 속하고 △시신의 목·팔·가슴·허벅지 등에서 멍이 다수 발견됐지만 대부분 심폐소생술 등 치료과정에서 발생한 상처였으며 △가격에 의한 상처는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27일 인의협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

▲ 27일 인의협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



이에 대해 인의협은 27일 오후3시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분향실 4호 근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뇌의 대측충격손상은 정지된 물체에 부딪히는 것에 의해서도 가능하지만 가격에 의한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며 "국과수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망인의 사망원인이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이라는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부상원인에 대해 "부검의와 의학적 판단의 몫이 아니라 조사기구의 몫"이라며 "의학은 모든 과학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한계를 벗어나는 판단은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정치적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인의협은 다른 상처가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는 국과수 판단에 대해 "망인의 어깨부위와 둔부의 피멍, 표피박탈 등은 심폐소생술로 인한 상처로 설명되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신경외과 전문의 김혁준(녹색병원 신경외과 과장) 씨는 "머리에 외력이 가해지면 의식손실이 일어날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충격이 약하면 의식을 회복해 걸어다닐 수도 있다"며 "몇시간이나 2∼3일 동안 현기증과 두통을 느끼다가 다시 의식을 잃을 수도 있는데 이런 점에서 전 씨의 경우는 전형적인 증상을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경찰에 폭행당해 쓰러진 고 전용철 농민을 다른 농민들이 발견해 들다시피 부축하고 공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빨간 머리띠를 맨 이가 김장택 제주도연맹 조천읍지회장, 고인의 오른쪽 팔을 붙든 이가 정태문 성산읍지회장이다. [출처] <민중의소리>(voiceofpeople.org)

▲ 지난 15일 경찰에 폭행당해 쓰러진 고 전용철 농민을 다른 농민들이 발견해 들다시피 부축하고 공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빨간 머리띠를 맨 이가 김장택 제주도연맹 조천읍지회장, 고인의 오른쪽 팔을 붙든 이가 정태문 성산읍지회장이다. [출처] <민중의소리>(voiceofpeople.org)



이어 열린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고 전용철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아래 범대위) 기자회견에서는 전 씨가 15일 농민대회 당시 부상당해 옮겨지는 사진이 공개돼 경찰폭력에 의해 사망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민중의 소리> 김철수 기자가 찍었고 사진에 기록된 촬영시각은 15일 오후 6시27분34초로 알려졌다. <민중의소리>에 따르면 당시 김 기자는 여의도공원에 마련된 농민대회 본무대를 바라보고 좌측으로 5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당시 전 씨를 옮겼던 4명 가운데 전남 화순지역 농민 배검 씨는 "경찰이 국기게양대 근처로 몰려올 때 전 씨가 경찰에게 방패로 가슴과 얼굴을 가격 당해 뒤로 넘어졌고, 경찰은 넘어져 있는 전 씨를 밟고 지나갔다"고 증언했다.

김장택 전농 제주도연맹 조천읍지회장은 "해질무렵 여의도공원 국기게양대 부근에서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갑자기 국회 쪽에서 몰려와 뒤로 피했다"며 "(잠시 뒤) 경찰이 지나갔던 게양대 부근에 가보니 농민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 지회장은 구급차를 기다리다 어떤 사람이 "차가운 곳에 두면 더 위헙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옮기자"고 해 4명이 앞뒤로 들고 무대 뒤편으로 옮겨 거적을 깔고 쓰러진 농민을 눕혔다.

쓰러진 전 씨를 김 지회장과 같이 옮긴 같은연맹 정태문 성산읍지회장은 "한 사람이 가만히 누워 있었고 죽은거 같아 맥을 짚어보니 맥은 뛰었었다"고 증언했다. 정 지회장은 전 씨가 이동 후 전혀 움직이지 않아 가슴 등을 눌러봤고 잠시 후 깨어난 전 씨에게 맞았냐고 질문해도 바로 전 상황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괜찮냐고 질문하니 일어나서 걸어갔다고 증언했다.

고인의 생전 모습. 가운데 선 이가 전용철 씨 [출처] 전농 충남도연맹

▲ 고인의 생전 모습. 가운데 선 이가 전용철 씨 [출처] 전농 충남도연맹



이번 사건에 대해 김치성 원불교인권위 정책부장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한 사람을 충분히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경찰의 진압방식이 문제"라며 "시위진압을 전문으로 하는 전·의경부대를 근본적으로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공무집행을 하는 경찰이 신분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데 전·의경은 익명성을 방패로 언제든 불법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며 "가해자의 소속부대를 밝히고 찾아낼 수 있으려면 부대표지와 이름표를 붙이도록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 경찰대응팀은 12월 1일 열리는 농민대회에서도 경찰폭력이 자행될 것으로 보고 감시활동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