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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즐거운 물구나무] 법원도서관 차별 유감

국가가 만든 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사용을 금지하는 도서관이 있다. 바로 대법원 소속의 법원도서관이다.

법원도서관은 운영내규로 열람대상자를 법관, 검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 법조인과 국가기관 및 연구기관의 직원, 마지막으로 '기타 상당한 이유가 있어 도서관장의 승인을 얻은 자'로 규정하고 있다. 법원도서관의 이용은 이른바 법조인들만이 할 수 있고, 일반인들은 원칙적으로 이용을 할 수 없으나, 다만 '상당한' 이유가 있어 도서관장의 '승인'을 얻은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도서관에서 자료를 이용하고자 검색을 하던 중 이러한 열람규정을 발견하고 당혹스러웠다. 차별에 대하여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사법부의 조직에서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2004년 여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진정 후 약 1년이 넘어서야 인권위로부터 5장짜리 기각결정 통지문(제3소위원회 정강자 위원장·김만흠·신혜수 위원)을 받았다. 인권위의 '인권침해및차별행위조사규칙' 제4조의 사건처리기한의 규정을 보면 진정을 접수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처리를 원칙으로 하고, 부득이한 사유의 경우 이를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1년이라는 진정처리기간은 '신속한 차별행위구제'를 목표로 한다는 인권위의 목표를 무색케 한다.

인권위는 결정문을 통해 법원도서관의 이용에 대한 일반인의 제한이 타당한 이유로 3가지를 밝혔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선 법조관계자들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재판지원업무라는 법원도서관의 설립목적과 인적·물적 시설조건을 고려할 때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적·물적 조건의 한계 때문에 차별이 발생한다면 그러한 조건을 제거하여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권고해야만 하는 것이 올바른 결정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법원도서관을 일반인들이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법조관계자들의 재판지원업무라는 목적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또한 인권위는 제한된 인적·물적 시설의 한계 내에서 일반인의 열람을 제한하고 예외적으로 열람을 허용하는 것은 재판업무지원이라는 목적의 달성을 위한 정책수단으로서 합리성과 적합성을 갖춘 방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업무지원'을 주된 기능으로 하는 국회도서관조차도 지난 2002년 만18세 이상의 국민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에 비추어본다면 인권위의 결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인권위는 마지막으로 법조관계자를 다르게 대우하여 달성하려는 재판업무지원이라는 특수목적의 실현과 이를 통한 공익적 효과(재판업무의 신속성과 효율성 증대 및 이로 인하여 법률서비스들이 이용자들이 간접적으로 얻게 되는 혜택)와 법원도서관을 완전 개방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익(일반인들의 사법정보에의 접근성 제고 및 국민의 알권리 실현 등) 및 개방 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도서관 증축과 이로 인한 부작용(대규모 도서관의 서울집중과 소규모 도서관의 지역분산배치정책으로의 정책전환의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비교·형량 할 때 일반인에 대한 이용제한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반인의 이용을 배제한 법원도서관의 이용이 과연 재판업무의 신속과 효율성 증대에 얼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일까? 재판업무의 신속성과 효율성은, 예를 들어 법관의 증원을 통하거나 사법절차의 개선을 통하는 등의 다른 요소들이 더 핵심적으로 좌우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그로 인해 법률서비스 이용자들이 얻게 되는 간접적 혜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법률서비스에 대한 비용이나 또는 복잡한 사법절차 때문에 일반 국민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현재의 조건에서 일반인들의 사법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더 많은 정책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원도서관의 개방 시 일반인의 사용이 증가한다면 그만큼의 시설 증축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사법부 및 국가가 부담해야 할 당연한 의무일 것이고, 각 지방법원에 있는 도서실도 단계적으로 일반인들에 개방하도록 노력한다면 도서관의 지역분산배치정책과 충분히 조화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위는 법원도서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변호하고 있다.

사법에의 국민참여와 민주화가 논의되는 이 시점에서, 누구보다 차별시정에 앞장서야 할 사법부의 한 조직인 법원도서관에서 전근대적인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은 정말 유감이다. 아직도 사법부가 특권의식에 젖어있으며, 그들만의 특권을 유지시키고 확인하는 기제를 통하여 '사회적 배제' 혹은 '차별'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은 '민주화된' 그리고 '인권 옹호적인' 사법부는 아직도 요원함을 보여준다. 또한 그런 법원도서관의 입장을 옹호하며 '차별'을 정당화한 인권위에게도 다시 한 번 유감을 표하며, 인권과 차별의 문제에 적극적인 사고를 해보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덧붙임

전김명훈 님은 인권운동연구소 비상임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