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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뛰어보자 폴짝] "무조건 외우는 공부는 싫어요"

시험에 쫓기는 아이들

#1 ○○점 짜리 아이?

"다음 문제 중 틀린 것은?"

문제들로 가득 찬 학습지를 놓고 진영이는 오늘도 씨름을 하고 있어요. 작년까지는 이렇게 외워서 시험을 보지 않았는데 올해부터 학년별로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치루는 학교가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학업성취도 평가'라나 뭐라나… 도대체 이런 시험은 누가 만든 건지… 진영이는 짜증이 났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일 치를 시험이 자꾸 걱정이 됐어요. 지난번 시험 성적이 90점을 넘었다며 같은 반 친구인 미숙이네 엄마가 진영이네 집에 와서 한 바탕 자랑을 하는 바람에 애꿎은 진영이만 엄마한테 혼이 났거든요. 그 다음날 진영이네 엄마는 학습지를 한 뭉치 사가지고 오셔서 "이번에는 미숙이보다 잘 봐야 한다"며 "90점 이상 나오면 원하는 걸 사주겠다"고 하셨어요.

물론 성적을 잘 받아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지만 진영이는 시험 성적에 따라서 자신이 ○○점 짜리 아이로만 평가받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어요. 또 자신보다 성적을 더 잘 받은 미숙이가 갑자기 미워지기 시작했어요.


#2 아빠는 시험공부 중?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학업성취도 평가로 일제고사(똑같은 문제로 같은 학년이 동시에 시험을 보는 것)가 다시 시작돼 집집마다 비상이 걸렸어요. 시험을 일주일 앞 둔 진국이네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빠는 "이제부터 시간표를 짜 놓고 공부를 해야 한다"며 "12시 전에는 잠 잘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진국이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과목별로 문제집을 펼쳐놓고 아빠랑 매일 문제풀이에 매달리고 있어요. 너무 졸려서 글자가 잘 들어오지 않고, 공부가 하기 싫을 때도 아빠가 옆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진국이는 문제집만 뚫어져라 쳐다볼 수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나와도 아빠는 무조건 외우라고 하셨기 때문에 공부가 자꾸 재미없어졌어요. 자신이 시험공부를 하는 건지, 아니면 아빠가 시험공부를 하는 건지 진국이가 헷갈릴 정도로 아빠는 진국이의 시험공부에 온 신경을 다 쏟았어요. 하지만 진국이는 이렇게 재미없는 공부를 계속 해야 하는 게 너무너무 싫었어요.


#3 학원은 싱글벙글, 문제집 출판사는 덩실덩실

서울에서 초 중등 보습학원을 하고 있는 원장 아저씨는 요즘 싱글벙글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있어요.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가 부활하면서 전 과목 시험을 준비하는 초등학생들이 늘어 학원생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해요. 학부모들은 학원에서는 시험 기간에 나올만한 문제들을 미리 뽑아서 문제풀이 수업을 해주고 있다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거든요.

학원과 마찬가지로 초등학생들이 푸는 문제집을 펴내는 출판사와 학습지 회사들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있어요. 시험 때문에 학습지 판매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에요.

미영이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바로가야해요.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7시지만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학교와 학원 숙제 때문에 미영이는 잠을 잘 때까지도 쉬거나 놀 수가 없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걸 비싼 돈을 들여서 왜 또 학원에 가서 배워야 하는지 미영이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서울시 교육청의 '학력신장 방안'이라는 대책으로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가 다시 시작되면서 시험 때문에 불안해하는 동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지난 23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나온 내용에서 보면 서울 전체 초등학교 559곳 중 546곳에서는 일제고사를 치뤘다고 해요. 또한 대부분 평가도 '수우미양가'와 같은 점수를 매겨서 등수를 표시하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옆에 있는 동무가 어느날 갑자기 경쟁자로 변하고, 성적표를 받는 날이 너무 부담스럽고, 학원을 다니느라 잠이 부족한 동무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공부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무조건 외우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통해 그 원리를 알고, 내용을 익히는 것이에요. 또한 국어, 수학뿐 아니라 동무들과의 생활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익히고, 다양한 교육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점수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무조건 외워서 시험을 치루게 하고, 한 가지 방식으로만 평가를 하는 지금과 같은 일제고사는 없어져야 해요. 또한 정부에서는 우리 동무들이 서로 경쟁이나 성적에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국정감사 : 국가가 살림을 잘 했는지 국회의원들이 살피고 확인하는 자리

[생각해봅시다] 평가는 없어져야 하나요?

일제고사와 같은 시험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지만 평가 자체가 없어져야 하는 건 아니에요. 평가란 국어 ○○점, 수학 ○○점이 아니에요. 또한 누가 누구보다 잘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평가란 우리 동무들이 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제대로 지원되었는지, 배운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도와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