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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길바닥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된다

고입·고졸 검정고시장에서 찍은 단체사진. 노들야학은 현재 50여 명의 학생과 교사가 생활하고 있다.

▲ 고입·고졸 검정고시장에서 찍은 단체사진. 노들야학은 현재 50여 명의 학생과 교사가 생활하고 있다.



노들은,

‘노란들판’의 준말입니다. 가을 녘 풍성한 들판을 바라보며 수확의 기쁨을 평등하게 나누어 가질 희망을 담은 말이지요. 그러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노들은 교육받지 못한 장애성인을 위한 검정고시 교육을 진행해 왔습니다.

1993년 8월 개교. 정립회관 내 무상으로 임대한 20여 평의 공간. 교무실을 먹은 세 칸의 교실. 하루 4시간, 저녁 6시부터 10시. 공휴일도 쉬지 않은 주 5일 수업. 우리·한소리·불수레·청솔, 4개 학급. 37명의 학생. 18명의 교사. 노들은 그렇게 14년하고도 다섯 달을 달려왔습니다.

‘5226날’

교실은 항상 좁았습니다. 학생 수가 늘어나 학급을 더 개설하고, 수준차가 너무 심하니 그 안에서 또 모둠을 나눕니다. 전동휠체어는 그 몸집이 비대하여 2인분을 차지합니다. 교무실을 교실로 내어주고도 복도며 로비·강당·노조사무실까지 빈 공간 어디든 옮겨 다니며 수업을 해야 했습니다. 알아서들 돌아가며 결석을 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초등과정(청솔)반 수업 모습.

▲ 초등과정(청솔)반 수업 모습.



손은 언제나 부족했습니다. 1·2급 중증장애인이 80% 이상인 우리 학생분들. 커피 한 잔도 혼자서 마시지 못하는 학생분이 많지요. 화장실을 가고 허기를 달래느라 군것질을 해야 하는 쉬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바쁘고 분주한 시간입니다. 이동은 늘 전쟁이지요. 4시간 수업을 위해 ‘노들봉고’는 5시간 동안 서울 곳곳을 돌며 학생들을 들고 업고 내리며 허리가 휩니다.

그럼에도 ‘투닥투닥’ 우린 늘 즐거웠지만 바보같이 아름답게 인내하는 것이 대수는 아니라는 것쯤,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막야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6월, 정립회관 측은 “자체적인 서비스 이용공간의 부족, 관리비 부족”을 이유로 2007년 12월 31일까지 교실공간을 비울 것을 요구해왔습니다. 14년 동안 장애성인 교육을 담당한 노들야학이 하루아침에 갈 공간을 잃은 데 대해 교육청과 교육부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지원불가’ 입장만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노들은 15년 동안 공부했던 공간에서 쫓겨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 세 동을 치고 농성을 겸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종로구청으로부터 철거 통보를 받고 있지만, 철거당한다 한들 우린 다시 천막을 칠 수 밖에 없습니다. 고작 40명도 되지 않는 장애학생들과 하는 수업이 누군가에겐 하찮아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세상과의 사다리였고 단 하루도 포기할 수 없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노들야학은 1월 2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 세 동을 치고 농성을 겸한 수업을 시작했다.

▲ 노들야학은 1월 2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 세 동을 치고 농성을 겸한 수업을 시작했다.



첫 키스가 아니라, 첫 외출

장애인구의 45.2%가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학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장애인등록제 실시 이후, 등록한 장애인이 대략 220만 명 정도가 됩니다. 100만 명 정도의 장애인이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하거나 겨우 졸업한 학력으로 이 살벌한 자본주의 경쟁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증장애인일수록 더 심할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가진 야학 학생 중 한 명은 자신이 “개 같은 삶”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서른 살이 훌쩍 넘어 야학을 다니게 된 그는, 어머니가 집을 나갈 때 “집 잘 봐라” 하시고, 돌아올 때 “집 잘 봤냐” 하시는 말만 들으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학교는커녕 외출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지요. 자신은 집을 지키는 개였답니다. 다른 학생분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 없습니다. 노들야학 학생분들 중에는 첫 외출이 20대, 30대인 분들이 많습니다. 첫 키스가 아니라, 첫 외출이요. 감옥과 무엇이 다릅니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합니다. 인간으로 살며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이 교육일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국가의 책임이요, 국민의 의무라 했습니다. 그러나 중증장애인들은 사회적 관계를 맺을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국가는 그 책임을 회피했고, 가족은 그 의무를 방기했지요. 정부는 잘난 사람에게 투자하기도 바쁘고 그 돈도 모자라다 하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중증장애인에게 무슨 놈의 교육이었겠습니까. 가족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병신 자식’ 업고 학교 보낸다고 무슨 영광을 보겠냐 했겠지요. 먹고 자고 싸는 것만이라도 조용히 해결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을 겁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은 그렇게 홀로 집을 지키는 개처럼, 방구석에 방치되었습니다.

새로이 정권이 교체되고 교육이 화두입니다. 누구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교육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대학의 자율과 경쟁력을 이야기합니다. 사교육비가 수조 원이 넘는다 합니다. 하버드대 재학생 중 한국인이 세 번째로 많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듭니다. 김포외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으로 합격이 취소된 44명의 거취를 두고 온 나라가 들썩였지만, 또한 그 ‘대한민국’에서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40여 명의 중증장애인들이 한글을 배우고 덧셈·뺄셈을 헤아릴 교실 공간 하나 구하지 못해 추운 길바닥에 친 천막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1000여 명의 등급을 올리고 내린다는 수능 물리시험 복수정답에 그 난리가 벌어지는데, 100만 명이 초등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사실엔 누구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이를 해결해야 할 당국의 책임자들은 모두 “법적 근거가 없다”는 편리한 핑계만 대며 회피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열악한 교육 현실은 ‘대한민국’ 교육의 야만적인 자화상입니다.

노들야학은 매주 토요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장애성인 교육권 쟁취, 노들야학 교육공간 확보’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 노들야학은 매주 토요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장애성인 교육권 쟁취, 노들야학 교육공간 확보’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배워야 합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언감생심 하버드대, 서울대를 꿈꾸지는 않습니다. 한 자 한 자 배워 길거리 간판을 읽고 동네 가게에서 내 손으로 계산하며 살고 싶습니다. 친구를 만나 ‘투닥거리며’ 정이 들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고 싶습니다.

노들야학의 교육이 “과히 훌륭하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교육을 소박하지만 치열하게 진행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다닌 모두에게 ‘학교’가 그랬듯이, 노들야학 또한 단지 검정고시 자격 취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이며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랑하고 싸우고 상처받고 치유하며 성장하는, ‘그런 학교’ 말입니다.

우리에게, 교실 하나 내어 주십시오

대학은 왕국처럼 현란하고, 하루아침에도 고층 빌딩이 섰다 사라지는 일쯤 아무것도 아닌 대한민국 아닙니까. 강당을 운동장을 기대하진 않겠습니다. 걸음이 느린 정란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우준의 거대한 전동휠체어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넉넉한, 수동휠체어를 탄 영애가 눈이 와도 올 수 있는 평지에, 쉬는 시간 우르르 몰려가도 모두 볼 일을 볼 수 있게 넓은 화장실과 혹시 불이 나면 대피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낀 그런 교실을, 더 많은 정란과 우준과 영애가 찾아올 수 있도록 너무 외지지 않은 곳에 내어 주십시오.

노들천막야학은 장애인의 빼앗긴 권리의 상징이며, 우리가 요구하는 교실은, 지금-우리의 것을 넘어 전체 장애성인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비록 춥고 좁지만, 노들이 늘 그랬듯이 우리 스스로 권리를 찾고 쟁취하기 위한 일상의 수업, 그 즐거운 투쟁의 길을 가겠습니다.

길바닥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됩니다.
덧붙임

◎ 박경석 님은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