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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하는 조례제정운동 본격화

이동권연대, 모범조례안 발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조례제정운동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29일 장애인이동권연대(아래 이동권연대)가 토론회를 열고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등에 관한 조례안'(아래 모범조례안)을 발표한 것.

2001년부터 시작된 이동권연대의 오랜 투쟁 끝에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아래 이동편의증진법)은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을 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세부사항을 시행령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떠넘겨, 법률 제정투쟁 못지 않게 시행령·조례 제정투쟁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토론회에서 심재옥 서울시의원(민주노동당)은 "(법에서 정한 조례이므로 조례 제정여부 보다는) '어떻게 하면 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못하는 부분을 구체화해서 규정할 것인가'라는 부분에 주목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일선 지방정부의 교통·복지행정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의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전체 버스의 절반 이상을 저상버스로

이동편의증진법은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했지만, 정작 중요한 도입비율은 시행령에 맡겼다. 현재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는 건설교통부는 이 비율을 2014년 기준 약 30%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모범조례안은 "매년 교체되는 버스차량의 50% 이상을 저상버스로 대체"하도록 했다. 발제자로 나선 배융호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정책실장은 "이것은 결국 10년 내에 전체 버스의 50% 이상이 저상버스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방자치단체의 여건에 맞게 수정할 수는 있"지만 "최소한 건설교통부의 계획인 30%보다는 높아야 하며, 가능하다면 50%까지 교체 비율을 높여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범조례안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운송사업주를 우선 선정하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며 △버스정류장·보도·도로 등을 정비하도록 했다. 또 저상버스 도입으로 추가되는 비용을 운송사업주에게 지원하도록 했다. 이에 비해 이동편의증진법은 "노선버스운송사업자에게 예산의 범위안에서 재정지원을 하여야 한다"고만 규정되어 있어 한정된 예산을 핑계로 저상버스 도입이 지체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토론자로 참여한 서영자 충북장애인권연대 정책국장은 모범조례안을 환영하면서도 "저상버스 도입을 시내버스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학교 통학버스와 직장 통근 버스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이후 장애인 교육권, 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우리 투쟁에 있어 주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서 정책국장은 "(이동권 개념을 확장시켜) 교통수단을 버스와 같은 기계적 장치로만 제한하지 말고 보행도 포함시켜야 한다"며 지난해 제정된 '청주시 보행권 확보 및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조례'를 예로 들었다. 이 조례는 "스스로의 힘으로 목적지까지 보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어린이·노인·장애인·임산부"를 '보행약자'로 정의하고 보행자용 편의시설과 휠체어 통행이 용이한 보행로 확보 등을 규정했다. 또 보행, 자전거 등 무동력·무공해 교통수단을 '녹색교통'으로 개념짓고 "모든 시민은 보행권 확보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녹색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노력한다"고 선언했다.


대중교통에 접근할 수 없을 경우 특별교통서비스 이용

저상버스가 확대돼도 아예 대중교통에 접근할 수 없는 교통약자에게는 무용지물이 된다. 이동편의증진법 제16조는 "이동에 심한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해 "특별교통수단을 운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교통약자와 특별교통수단 운행자를 연결하는 "이동지원센터를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조례에 떠넘겼다. 모범조례안은 '특별교통서비스'를 "교통약자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휠체어리프트 등이 장착된 차량을 통한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동지원센터에서 대상자를 사전에 심의·선정해 △예약제로 운영하며 △이용요금은 버스 및 도시철도 요금에 준하도록 했다.

배 정책실장은 "특별교통서비스는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장애인콜택시와는 다른 성격의 교통서비스"라며 "대중교통에 대한 완전한 접근이 보장될 때까지는 대중교통을 보완하는 형태로 운영이 되며, 대중교통에 대한 완전한 접근이 보장된 이후에는 접근가능한 대중교통마저 이용이 어려운 중증의 교통약자를 위한 특별서비스 성격을 지니게 된다"고 설명했다.


당사자 참여 보장하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위원회'

이동편의증진법에는 없지만 이번 모범조례안에 새로 포함된 내용으로는 '이동편의증진계획' 수립에 당사자 참여를 보장하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이동편의증진법은 5년 단위로 건설교통부장관이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방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면서, 사전에 각각 중앙도시교통정책심의위원회와 지방도시교통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했다. 도시교통정비촉진법에 따라 이미 구성되어 있는 이들 위원회는 대부분 공무원으로 채워져 있고, 민간위원은 '교통·도시계획 등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위원장이 위촉하고 있어 당사자인 교통약자의 참여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김광이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이동권 보장을 위한) 비용과 방법의 효율적 판단은 법의 보호대상인 권리자와 시행주체인 의무자가 대등하게 해결주체가 되어야 한다"며 "(심의위원회의) 위원구성과 기능을 상당부분 개정하지 않는다면 그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배 정책실장도 "이동편의증진법만을 두고 볼 때, 시민 및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된 유일한 부분은 중앙도시교통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라며 "조례마저 행정편의 위주로, 시의회 차원에서 적당히 제정된다면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통로는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모범조례안은 위원 과반수를 장애인·노인 등 교통약자로 구성하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위원회'를 둬 이동편의증진 계획의 수립과 평가, 이동지원센터 감독 등의 권한을 부여했다. 배 정책실장은 "기존의 자문성격의 위원회와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며 "교통약자가 당사자로 참여함과 동시에 지방자치단체의 이동편의증진 정책에 대한 심의와 감시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당사자의 입장에서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 정책국장은 위원구성에 대해 "(단체장 위촉 형식은) 지자체의 구미에 맞는 단체에 제한적으로 제안하여 의견을 받고 위촉을 하기 때문에 주민참여 또는 당사자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위원회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며 "공모제나 추천제와 같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와 제도를 명시해야 하며, 위원 선정에 있어 기준과 원칙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모범조례안은 올해 초 이동권연대와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민주노동당 등이 조례안 제정을 위해 만든 태스크포스팀에서 초안이 만들어졌으며, 여러 차례의 내부 간담회를 거쳐 이날 토론회에서 공개됐다. 이동권연대 김도경 사무차장은 "이번 조례안을 토대로 각 지역실정에 맞게 조례안이 논의되면, 올해 하반기부터는 전국적인 조례제정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