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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 영화를 만나다] '노가다'를 말한다

건설일용노동자를 그린 다큐멘터리 <노가다> 제작하는 김미례 감독

뒤틀린 한국 자본주의의 현주소를 상징하며, '부실과 비리의 온상'이라 지목되는 건설업. 건설업계의 온갖 문제들을 양산하는 불법다단계 하도급의 견고한 피라미드 끝자락에는 노가다 인생의 땀과 분노가 서려있다. 노가다 인생길을 걸어온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부당함의 실체를 목도한 감독의 분노와 주목받지 못한 '밑바닥' 삶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 영화, <노가다>의 후반 작업이 한창이다. 7월말 제작 완료를 앞두고 있는 김미례 감독을 만나보았다.

김미례 감독

▲ 김미례 감독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70년대 서울로 올라오면서 건설일용노동자의 삶을 시작한 아버지가 IMF 때, 오랜 기간 실업 상태에 놓여 있었다. 평생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일만 하신 분이, 당시 갑작스레 노숙자가 되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건설일용노동현장의 면면을 카메라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다. 그동안 여성노동자, 레미콘 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는데, 이번 작업에 대한 구상은 계속 마음속에 자리했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당시 전국건설일용노동자협의회를 찾았고, 아버지의 일상을 찬찬히 기록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건설현장에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노동자 분들이 처음에는 카메라에 찍히는 걸 거부하셨지만 관계가 긴밀하게 쌓여가면서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주셨다.

이른바 '오야지'(일을 주문받고 현장 노동자들을 관리·통제하는 역할을 수행)를 따라다니면서 건설현장을 떠돌던 아버지가 늙고 힘이 부쳐 몇 년 전에는 현장 경비로 취업하셨다. 임금 체불이 여전히 반복되는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현장 경비직에서 해고되었다. 현재는 노가다 인생이 정리된 셈이다. 한번도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아버지는 이번 작업에서 주요하게 등장한다는 것을 좋아하신다.

건설 현장의 한 노동자(작품과 무관한 사진입니다) [출처] 김정우

▲ 건설 현장의 한 노동자(작품과 무관한 사진입니다) [출처] 김정우



작품의 주된 축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지는가?

임금 체불과 열악하기 짝이 없는 노동 환경을 유발하는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불법다단계 하도급의 문제를 파헤치는 한편,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실제 투쟁의 사례를 보여줄 예정이다. 한국에서 세영건설을 상대로 한 투쟁, 일본의 아사히 건설을 향한 싸움을 주요한 두 축으로 설정하되, 아버지와 일본의 늙은 노동자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그릴 생각이다.

일본의 사례를 부각시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본 건설일용노동자들의 복지 정책이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의 결과로 그나마 잘 구축된 듯 보이지만, 현재 일본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상당히 취약하다. 일본 건설 자본은 나이든 노동들을 배제시키면서 젊은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임금을 적게 지급한다. 나이든 노동자들은 건설일용노동자들의 거리인 '가마가사키'에서 노숙 생활을 이어가다 최후를 맞고 있다. 일부 나이든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동력이 부족하다. 젊은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다수 존재하고, 상대적으로 조직화 비율이 높은 한국의 상황을 많이 부러워한다.

운동의 동력이 소진되어가는 일본의 상황을 반추해 보며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으면 좋겠다. 일본의 '경험'과 한국의 '힘'이 만나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작품이 제작되고 난 이후 어떻게 배급할 생각인가?

한일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 보여주고픈 마음이 크다. 일본의 노동자들을 처음 접하고 작업의 의도를 말했을 때 "세계는 변화할 수 있다"고 북돋아 주며 "노동자들이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라"고 조언해 주었다. 한국 노동자들 역시 '우리 카메라멘'이라 여기며 작업을 지지해 주었다.

또한 운동 진영 내에도 노가다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는데, 운동단체에서 이번 작품을 접하면서 그 점이 바뀌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