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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광주 25주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살을 바친 5.18광주민중항쟁이 벌써 25년 전의 일이 되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광주를 향한 헌화의 길이 이어지고 있고 언제부턴가 군부독재의 자양분을 먹고 살아온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그 길목을 더럽히고 있다. 하지만 5.18광주민중항쟁은 맘 편히 회상할 수 있는 탈고된 역사가 아니라 아직 핏자국도 마르지 않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로 남아 있다.

10년 전을 떠올려 보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형선고라는 세계적으로 드문 판결을 이끌어 냈지만 이들은 싱겁게 사면되었고 추징금마저 떼어먹은 채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다. 5.18을 기억하기 위해 모여드는 지금은 10년 전 사법부가 '봉인'해 버린 '미진한 진상규명'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이다. 당시 법원은 발포명령 경위와 책임자를 끝내 밝혀내지 않았고, 법정에 선 가해자 대부분에 대해 내란목적살인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최근 5.18 관련단체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는 606명에 이르지만 정부가 인정한 사망자는 고작 154명뿐이다. 실종자와 암매장 당한 사람들까지 이름 없는 희생자에 대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국민들은 "죽은 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고 허탈해 했다. 사형 판결에서 사면까지 정부의 깜짝쇼는 오히려 학살자들에게 죄를 '청산'할 수 있는 면죄부만을 준 것이다. 한편 '실체적 진실 규명' 없이 이루어진 피해자들에 대한 개별보상은 정당한 배상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희생자와 유족의 원한을 돈으로 무마시키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5.18학살의 주범들에 대한 사법 처리는 국민적 공감도 피해자 인권 복원에도 실패한 정치쇼임에 분명하다. 신군부 세력은 광주에서 두살난 아이부터 70세의 노인까지 살해하는 피의 대가로 정권을 잡은 후 삼청교육대 사건, 언론 탄압, 노동자 탄압, 고문 등을 자행했다. 이들에 대한 사법 처리 과정에서 이러한 국가 폭력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당시 국민감정으로 폭발한 신군부에 대한 분노는 5, 6공 당시 발생한 중대 인권침해범죄에 대한 과거청산의 기폭제로 사용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패배감만을 가중시킨 셈이다.

5.18은 과거청산이 가해자들을 한 번 망신 주고 마는 정치적 타결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운다. 하지만 최근 통과된 과거사법은 공소시효 배제의 원칙은커녕, 조사대상과 조사권한 마저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어 '실체적 진실 규명'의 과제도,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인권 복원'에도 명확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국가차원의 기억의 의무를 이행하고 또다른 국가 폭력을 견제하기 위해 5.18이 보여주는 과거 청산의 현주소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