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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자의 눈] 국가경쟁력 앞에 인권은?

인권위,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 논의 본격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국회 환노위에 계류중인 두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에 대한 의견표명을 위해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지난 6일 인권위 제8차 전원위원회에서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안'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륭중개정법률안'을 검토한 것.

이 안건은 지난 3월 28일 제7차 전원위원회에도 상정되었으나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이날 회의로 미뤄진 바 있다. 이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최영도 전 위원장이 재산문제로 중도사임해 위원장 궐석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컸던 것.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두 법안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은 진행되지 못했고 오히려 비정규직 사안을 둘러싼 위원들의 시각차이만 확연히 드러났다.


비정규직 문제는 인권문제가 아니다?

첫번째 쟁점은 '두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의견표명이 인권위 본연의 업무인가 아닌가'였고 두번째 쟁점은 '비정규직 사안에 대해 인권의 관점으로 보느냐 국가경쟁력의 입장에서 보느냐'로 맞추어졌다. 따라서 두 법안에 관한 각론의 쟁점은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위원들의 비정규직에 관한 시각 차이는 사회권의 중요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권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됐다.

이해학 위원은 "비정규직 법안을 논의하는 주체는 노사정이 서로 합의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지금 국회로 법안이 와있고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권위가) 결정하는 것을 꼭 해야되느냐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비정규직 법안) 자체가 너무 정치 쟁점화 되어 우리가 어디의 손을 들어주는 입장은 정치적 문제에 뛰어드는 것 같아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인섭 위원은 "이 시점에서 아무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정치적인 것이며, (인권위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호준 위원은 "인권위에서 다룰만한 적절한 주제인가? 노사정에서 다루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표명하며 "비정규직 문제가 확산되는 것은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결과이지 인권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권위보다는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다루는 것이 좋다는 것. 김 위원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일 수 있다. 그래서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강자 위원은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원칙이 약자의 입장에서 관계가 작동될 때 일정하게 국가가 (노동시장에) 개입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은 "두 비정규직 법안이 비정규노동자를 어려움으로 빠져들게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국회에서 두 법안에 대해 논의를 촉진하도록 인권위가 인권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최영애 위원도 비정규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는 사회권 침해의 관점에서 "인권위원회가 마땅히 의견표명을 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김만흠, 최금숙 위원 역시 두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략 한 시간 정도의 논의를 끝으로 두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검토는 다음 회의로 이월됐다.


김호준, 이해학 위원에게 묻는다

국가보안법 존치론자들이 항상 '국가안보'를 주장하듯, 비정규직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매번 '국가경쟁력'을 앞세운다. 김호준 위원 역시 국가경쟁력을 내세워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필수적임을 언급했으나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경쟁력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득하지는 못했다.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경제우선' 논리는 '국가경쟁력'이라는 포장으로 장식되곤 했다. 또한 2기로 접어든 인권위가 다른 국가기구와는 달리 명확한 자기색깔과 정책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사회권의 주요 부분인 비정규직 사안에 대해 노사정과는 다른 인권적 관점의 입장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사안에 대한 의견표명을 '정치화된 싸움에 누군가의 손 들어주기' 식으로 이해하는 이해학 위원의 입장은 과연 인권위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했다. 이날 전원위원회 회의를 모니터 한 '인권단체 사회권전략팀'의 박현진(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이해학, 김호준 위원들이 사회권에 대해 인식이 없음을 확인했고, 특히 노동권이 왜 인권인지를 몰라 의견표명 자체를 꺼려하고 있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오는 11일 전원위원회 회의를 통해 두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최종 입장을 의결할 예정이다. 국가인권위법 제19조(업무)는 인권위의 업무로 "인권에 관한 법령(입법과정 중에 있는 법령안을 포함한다)·제도·정책·관행의 조사와 연구 및 그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권고 또는 의견의 표명"을 규정하고 있다. 한 주 더 미뤄진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과연 인권의 관점으로 의견표명이 이뤄질지 각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