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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 영화를 만나다] 3월 반딧불, "나는 페미니스트다"

여전히 여성들에게 '페미니스트'란 꼬리표는 부담스럽다.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순간 개인의 참모습은 무시되고, 잘난 체하거나 이기적인, 혹은 나서길 좋아하는 여자라는 외부의 시선이 그녀를 규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인식하면서도 페미니즘을 '동경은 하지만 실행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역시 페미니스트를 왜곡된 시선으로 규정짓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 때문이다. 파로미타 보라(Paromita Vohra)의 2002년작 다큐멘터리 <멈추지 않는 그녀들(Unlimited Girls)>은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다. 혼자되고 싶지 않아서 페미니스트이길 거부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과연 우리는 페미니즘의 혜택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일상에서 여성들은 과연 페미니즘을 생각하기는 할까?

<멈추지 않는 그녀들>의 한 장면 [출처] 인권영화제

▲ <멈추지 않는 그녀들>의 한 장면 [출처] 인권영화제



<멈추지 않는 그녀들>의 주인공은 인도 봄베이의 유일한 여성 택시운전사를 비롯해 노동조합, 출판사, 여성발전센터 등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연애를 하고 결혼한 평범한 커플, 남녀공학에 다니는 남학생과 여학생들을 찾아다니며 페미니즘에 대한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여기에 채팅방에서의 논쟁과 함께 주인공이 페미니즘을 고민하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겪는 물음들과 혼란스러움이 덧붙여진다. 카메라에 담긴 수많은 목소리와 공간들만큼이나 이를 표현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이모티콘이 난무하는 채팅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 주인공이 상상해본 가상의 상황들을 보여주는 픽션들과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질문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그래픽 등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발랄하게 또 때로는 진지하게 페미니즘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멈추지 않는 그녀들>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혹은 우리는 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페미니즘을 고민하기 시작한 주인공 여성을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즘 혹은 여성 운동이 이 사회에서 발휘해온 영향력과 효과들, 그리고 그것이 바꾸어낸 변화들, 한편으로 여전히 지난하게 남아있는 과제들을 새삼 돌아보고 생각해보게 된다. 남자노동자들이 훨씬 많은 노동조합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활동가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페미니스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편에서는 결혼지참금으로 인해 죽는 여자들이 존재하고, '우리'와 '가족'을 강조하는 가부장제가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받는 차별은 참을 수는 없지만 남을 위해 희생하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여성이나,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나 민소매 옷을 입는 이유가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남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는 다른 페미니스트의 노력과 운동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기만 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것이다.

3월 인권영화 정기상영회 반딧불은 <멈추지 않는 그녀들>의 상영과 함께 이러한 여성의 고민들을 함께 풀어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영화 상영에 이어 조이여울 씨와 함께 하는 부대행사를 통해 그저 부담스럽기만 한 꼬리표나 동경의 차원에서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때와 곳 : 3월 19일(토) 3시,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대강의실
상영작 : <멈추지 않는 그녀들>
부대행사 : 조이여울(일다 편집장)과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어 보는 자리
상영장 찾아오는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