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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미국은 이라크 경제주권을 어떻게 탈취했나?"

<기고> 5회 세계사회포럼 현장(3)

아래는 '남반구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의 메리 루(Mary Lou)가 『침묵의 전쟁』(Silent War)이라는 책자에 발표한 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고 요약·발췌해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은 세계사회포럼에서 입수했다.


미국은 이라크에 주권을 넘겨주기 직전 '연합군임시정부훈령'(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 Orders), 이른바 '브레머 훈령'을 발효시켰다. 여기에는 이라크 바트당 체제 해체부터 새로운 새 통화 발행에 이르기까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훈령의 반포는 연합군정부가 이라크의 파괴된 기초시설을 복구하던 것과 비교해보면 '경이로울 정도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중에서 '훈령 39'가 가지는 경제적 충격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훈령 39'는 2003년 8월 19일 다른 훈령들과 함께 발령되었다. "이라크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통하여 외국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훈령은 채 6쪽이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나프타(NAFTA) 등 100여 쪽이 넘는 다른 자유무역협정이 담고 있는 모든 내용들이 다 담겨 있다.

"외국 투자라고 함은 그것이 유형이건 무형이건 이라크 내의 모든 자산에 대해 외국인 투자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투자를 말한다. 여기에는 특별하게 이 훈령에서 밝히지 않는 한 관련된 재산권, 주식(shares), 모든 비즈니스 안에서의 참여, 지적재산권, 기술적 감정 등을 포함한다."

심지어 '미국-칠레 자유무역협정'의 경우에는 '투자의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투자자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훈령 39' 역시 투자자의 개념을 매우 광범위하게 설정해 언제든 남용될 여지를 남겨 놓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라크 내에서 이라크 투자자들이 받는 것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라크 내에 투자할 수 있는 참여의 양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제한이 없다."

대부분의 저개발국가들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제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드시 일정 비율 이상으로 자국 물품을 사용하도록 하거나 내국인 인력을 고용하도록 하는 단서조항(Performance Requirements)을 두고 있는 것. 그러나 이런 단서조항은 '나프타'(NAFTA)나 여러 양자간자유무역협정에서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내국민대우(National Treatment)라는 이름의 이 정책을 수용한 나라는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이름으로 국내 산업에 대한 보호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모든 형태의 펀드, 즉 1) 주식과 이윤과 배당, 2) 판매와 기타 다른 외국 투자와 관련해서 생긴 이윤으로부터 생긴 수입, 3) 이자, 로얄티, 관리비, 계약상의 지불 4) 통상부의 허락을 받은 모든 일체의 송금 등은 아무런 지체 없이 외국으로 즉각 송금될 수 있다"

대다수의 정부는 환율방어와 이자율 지지를 통해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조항들을 가지고 있다. 칠레 정부의 경우에도 1991년에서 1998년까지 엔카제(Encaje)라고 불리는 이런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칠레 자유무역협정'에는 자본의 이동에 대한 통제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칠레 정부가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배상을 하게끔 정해놓았다. 나프타의 경우에도 9조에서 자본통제를 금지하고 있는데 '훈령 39'는 이 조항을 그대로 반복해 놓은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라크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다시 이라크에 투자해야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이라크가 참여하고 있는 어떠한 국제협약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더 호의적인 조항들을 제공한다면, 이런 더 호의적인 국제적 조항들이 이라크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훈령 39'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 있는 이 조항은 이라크가 WTO나 다른 자유무역과 관련된 협약들에[ 가입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권을 계속 확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라크 금융장관이 말한 것처럼 이 모든 것은 "이라크에서 자유 시장 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중대한 진보"이다.

이 '훈령 39'는 정말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뚝딱 만들어졌다. 다른 나라의 양자간, 다자간 무역협정의 경우 빨라야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협정들은 그 내용이 가지고 있는 파괴력 때문에 대부분 비밀리에 진행되나 협상 당사국 민중들의 저항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이라크 '39호 훈령'이 가진 가장 비극적인 측면이 있다. 이 훈령은 그 누구로부터도 저항을 받지 않았다. 이라크 민중들이 여기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라크 민중들은 이 훈령이 제정되고 반포되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이라크 민중들이 자신의 생명과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에 전념하는 동안, 미국은 이라크를 자유무역에 동여매기 위한 이 훈령을 슬그머니 제정, 반포했다. 사실 미국은 이라크의 그 누구와도 협상을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한 미군 관리의 다음 말에서 가장 잘 설명된다.

"우리는 우리와 협상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부였기 때문이다" [포르투 알레그레=엄기호]
덧붙임

엄기호 님은 팍스로마나(Pax Romana) 동북아시아 담당(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