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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세계 에이즈의 날, "감염인들의 인권은 없었다"


눈물을 닦아주듯 명주 수건을 쓸어 내리던 손이 힘차게 하늘을 향해 뻗는다. 국가인권위원회 앞 거리에서는 쌀쌀한 바람을 뚫고 살풀이가 벌어졌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감염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행사였다.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와 인권단체들 주최로 열린 이날 추모행사에서 이들은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들이 질병으로 사망하기 전에 이미 차별과 낙인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사망선고를 받고 있다"며 죽음조차 숨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책임은 감염인에 대해 감시와 통제로만 일관해 온 정부에 있음을 선언했다.

행동하는 의사회 회원인 미류 씨는 "이번 행사가 감염인 인권의 사망을 선고하는 자리였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사회에 감염인 인권이란 없었다"고 지적했다. 보건소에서 일방적으로 가족에게 감염사실을 통보하여 가출하게 된 사람, 감염인이었던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이웃의 냉대와 멸시를 견뎌야했던 자녀들, 감염사실을 알게 된 후 누군가 자신을 가두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치료도 받지 못하고 도망 다니다 하반신 마비까지 얻게 된 감염인, 이런 사례들은 아직까지 안타까움의 대상일 뿐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해 부당하게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류 씨의 설명이다.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 윤호제(가명) 대표는 3년 전 떠나보낸 친구에게 추모사를 하며 "아직도 얼굴을 드러낼 수 없어 검은 천을 쓰고 너의 영정 앞에 서는 걸 용서해 달라"며 울먹였다. 윤 대표는 "매년 에이즈의 날이면 에이즈 환자들의 희망의 상징인 레드리본을 달지만 감염인들의 치료접근권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와 노동권 등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레드리본을 달 수 없었다"며 이러한 인권침해가 감염인들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시급히 개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들은 감염인의 인권을 알리기 위해 최근 'HIV/AIDS 인권지침서'를 발간, 배포했으며, 지난달 27일에는 '에이즈 인권 시민 캠페인'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