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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관사의 건강이 바로 시민 안전"

도시철도노동자들 공황장애 심각


"열차 운전 중에 갑자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지고 사지가 떨리며 죽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심지어 달리는 열차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 뛰어내리지 않으려고 열차 문고리를 잡고 있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전형적인' 공황장애 증세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한 도시철도 기관사의 말이었다. 최근 서울도시철도공사노조는 84명의 기관사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18명이 공황장애가 심각한 유소견자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공황장애는 주로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급격히 고조되는 격심한 불안과 더불어 질식감, 어지러움, 이대로 미치거나 죽을 것 같은 극한의 공포 등의 신체·정신적 증상이 나타나는 극심한 불안장애로 신경질환의 일환이다. 공황장애 뿐만 아니라 불안장애와 적응장애 등도 있는데 이러한 신경정신질환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기관사의 경우에는 1인 승무제도로 운행사고 등에 대한 책임을 혼자 부담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밀폐된 지하공간에서 혼자 고립된 상태로 장시간 근무함으로써 심각한 스트레스성 질환이 유발된다. 또 만성적으로 인력이 부족해 기관사들은 보통 한 주에 주간근무 3번, 야간근무 2번을 번갈아 하는데 주간에는 보통 10시간, 야간에는 14시간 정도 작업장에 체류하게 돼 노동자들은 "아파도 병가를 낼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인권하루소식 2004년 2월 14일자 참조>

지난 해 8월에는 두 명의 기관사가 적응장애, 정신분열 등으로 고생을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중 고 서민권 기관사는 직업병으로 인정받았지만 고 임채수 기관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심사가 계류중에 있다. 이후 4명의 노동자가 추가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승인 및 요양신청을 진행해 승인을 받았다. 서울도시철도공사노조는 공사 측에 임시건강검진 실시를 신청했으나 공사 측은 '사후 프로그램'만을 약속하며 건강검진을 거부했다. 이에 노조에서는 9월 말 800여 명의 기관사들 중 84명의 기관사들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자체검진을 실시했다. 이 검사에서 18명이 유소견자로 드러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증상이 심각한 7명에 대해 19일 집단산재요양 승인을 신청했다. 한 편으로 노조는 건강검진 실시를 거부한 공사측을 노동부에 고소해 2005년 상반기에는 건강검진을 실시하겠다는 공사의 약속을 받아냈다.

이번에 산재요양을 신청한 도시철도 답십리 지부 김권중 기관사는 "공황장애 증세가 있어 97년부터 약을 복용했고 2001년부터는 신경치료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작업을 하는데 한계가 온 것 같다"며 "많은 기관사들이 누구에게 '아프다'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공단 직무스트레스연구회는 지난 1월 도시철도승무 직능직무스트레스 연구조사를 실시했다. 그 조사에서 지난해 신경정신과 치료 유경험자는 21명이고, 불안장애·공황장애·적응장애 등 신경정신과 정밀검진 유소견자는 무려 112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재노협 김재천 의장은 "IMF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고통받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게 아니라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 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구조적으로 침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하루에 220여만 명을 수송하는데, 공황장애로 인한 공황발작은 대형사고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관사들의 건강은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현재 도시철도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연맹은 △공황장애를 산재로 인정 △신경질환의 원인인 장시간 운전, 불규칙한 근무시간, 작업환경 개선 △2인 승무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도시철도 기관사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를 확보할 수 있을지 시민들은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