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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즐거운 물구나무 ◀ '명령과 위엄'만 남아 있는 곳

재판을 앞둔 한 아이(가명 미정, 16살)와 함께 법원을 찾은 적이 있다. 자전거를 훔친 사건이었지만 처음인 점 등이 고려돼서 미정이는 가장 약한 처분이라는 1호처분(6개월간 매주 1번씩 상담 받을 것)을 받았다. 법정에서 처분을 받은 날, 미정이네 가정 상태에 대한 간략한 조사가 있었다. 미정이는 알콜릭에 장애 3급, 정신분열까지 갖고 있는 아빠와 단둘이 산다.

법원의 결정 후, 담당자는 '상담자 지정과 처분에 대한 서면공지' 때문에 한번 더 법원에 오라고 했다. 나는 오전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아이의 사정을 고려해 달라고 했지만, 판사와 달리 담당자는 요청을 들어 줄 수 없다고 했다. 미정이와 나는 약속시간 보다 늦게 담당자를 만나러 갔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가르마를 칼처럼 낸 40대 남성이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교무실에 불려온 아이들처럼 그가 앉아 있는 책상 앞에 서있었다. 그는 이름을 확인하더니 아이에게 "똑바로 서라", "옷을 바로 입어라"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너 몇 시에 일어났어?, 왜 너만 늦어? 법을 뭘로 알고있는 거야, 이 자식이 반성하고 있는 것 맞아, 아니지?"라며 윽박질렀다. 소년법정의 판사가 부드러운 말과 태도로 아이를 다독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도 안하고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묻지도 않은 채 큰 소리로 아이를 다그쳤다. 말을 건넬 틈도 없이 그가 늘어놓는 훈계를 들어야 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진다.

법원을 대표해 아이를 만난 조사관은 열 여섯 살 아이가 왜 비행을 저지르게 됐는지, 아이의 가정환경이 어떤지, 상황개선을 위해 사법기관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이 없었다. 열 여섯 살 청소년에 대한 '배려'가 실종된 자리에서 '위엄과 명령'만 남아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욱이 '법을 어겼다'는 행적과 '나이가 어리다'는 현실은 누군가를 무시하고, 몰아세우기에 무척이나 이가 잘 맞는 톱니가 아니던가.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들어 있던 아이의 어깨가 더 움츠려 들었다. 법정의 판결로만 청소년 보호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시선이 집중되지 않는 법정 이면에서 벌어지는 '위압적인 태도'도 함께 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