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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전쟁 중이라도 병역거부권은 인정돼야"

유엔 인권위, 보편적 인권으로 '병역거부권' 인정

"인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할만한 특수한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전쟁 중이더라도 말이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아래 병역거부권)이 보편적 인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60차 유엔 인권위원회(아래 유엔 인권위)에 참가하고 온 평화인권연대 정용욱 활동가의 말이다. 유엔 인권위는 19일 병역거부권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해 각국이 관련 법률과 관행을 결의안에 따라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이미 유엔 인권위는 병역거부권이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한 권리"임을 확인하며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마련을 각국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특히 이번 결의안은 내용이 강화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결의안 공동 제안국이 14개국에서 34개국으로 늘어났고, 미국도 유엔 인권위에서의 발언을 통해 병역거부권을 지지했다. 또한 전후 평화건설 중인 국가에게도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사면·복권 등을 제공하고, 그러한 조치가 법률과 관행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이행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전쟁시의 병역거부권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내전을 겪었던 국가들도 이번 결의안 제안에 참여했고 그 중에는 이미 병역거부권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며,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근거로 해서 인권으로서의 병역거부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정씨는 병역거부권이 평화시기에 제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중에 제기된 것임을 강조하며 "한국에서도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면서 제도적인 보완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521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수감돼 있으며, 매년 약 700명의 병역거부자들이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이 결의안에 찬성했다는 역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 씨는 "한국 정부는 겉으로는 찬성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의지도, 제도적으로 실행할 계획도 없다"고 비판하며, "유엔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따라 -미국마저 동의한다고 하는데!- 찬성할 뿐"이라는 정부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국제인권무대에서 한국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는 이주노동자 인권의 경우(본지 2004년 3월 24일 자 참조)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정 씨는 "2002년 이후 두 번째로 참가하면서 유엔의 역할과 국제연대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제네바에서의 활동을 평가했다. 또한 국내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현존하는 대체복무제도를 개선, 보완해서 병역거부자들이 할 수 있는 대체복무법안을 만들어내는 입법운동을 전개하고, 병역거부자들의 사면·복권 문제도 함께 제기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한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구속수사는 여전해, 얼마 전 구속됐던 임태훈 씨의 보석이 기각됐고 지난 1월 병역 거부를 선언했던 영민 씨도 12일 구속됐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거부 사유 소견서를 병무청과 해당 경찰서에 제출하고 있지만, 검찰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를 이유로 구속수사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 유엔 인권위에서 병역거부권을 인권으로 인정하는 결의안에 찬성한 한국정부가 국내에서는 병역거부자들에게 구속수사와 실형선고를 강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권증진과 보호의 의무는 인권외교를 위한 장식물이 아니다. 정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에 관한 유엔 결의안을 국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해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