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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유전자 디비'로 미아찾기, 논란 속 경찰 시행

인권사회단체, "법적 근거 없다"고 우려

전국 보호시설에 수용 중인 아동과 미아 부모를 대상으로 DNA를 채취한 후 유전자를 데이터베이스(아래 디비)로 구축하는 미아찾기 사업이 경찰에 의해 시행된다. 시료 채취를 위한 작업이 21일부터 집행됨에 따라 미아찾기 유전자 디비 구축을 위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

이에 20일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등 14개 인권사회단체들은 성명과 의견서를 통해 '미아찾기라는 인도적 측면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 신중을 촉구한다'면서 "유전자 디비 구축사업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우려하고 "미아와 부모에 대한 DNA 수집 근거, 분석, 이용, 보관, DNA구축, 유전정보 보호 등에 대한 것들이 법률에 기초하지 않고 임의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미아찾기 사업의 정당성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기술적 우수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인권사회단체는 "그 동안 부당하게 지문을 채취·공유하고 용의자들을 대상으로 DNA를 채취·관리해온 경찰의 관행을 볼 때, 경찰이 법적 근거 없이 디비화된 유전 정보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이 사업이 지난 2001년부터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왔음에도 정부가 이 문제를 공론화 하여 관련 법률을 정비하는 등 세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경찰청이 이 사업을 일부 장기미아에 한정해 실시할 것이라면 유전자 디비를 확장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002년 행정자치위원회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집계한 미아신고 접수 현황은 1999년 3천321건, 2000년 4천48건이다. 이중 1999년의 경우 3천208건이, 2000년의 경우 3천798건이 보호자에게 인계되어, 인계율이 96.6%, 93.8%로 집계됐다. 그러나 보호자에게 인계되지 못한 나머지 미아들은 통상 '장기미아'로 불려지는데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에 따르면 누적된 장기미아는 대략 13만에서 2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 동안 아이를 잃어버린 가족들의 노력으로 최근 경찰이 초동수사 단계에서 대응력이 높아져 이전보다는 인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된 장기미아의 경우, 이들이 부모와 상봉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나주봉 회장은 "장기미아의 경우, 과거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흡해서 자료도 남아있지 않고, 아무리 부모라도 아이들이 외모, 체형 등이 변해서 자식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며 "장기미아를 찾기 위해서는 유전자 디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관계법령의 부재가 미아와 부모에 대한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권사회단체들의 지적에 대해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 동안 미아찾기 관계법령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은 유전자 디비 외 장기미아를 찾기 위해 전국적으로 신고·미신고복지시설(조건부 복지신고시설 포함)을 망라한 무연고 아동카드를 인터넷(미아찾기전국종합시스템)에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현재 보건복지부 위탁으로 한국복지재단이 '어린이 찾아주기 종합센터'를 운영, 미아에 대한 신상정보(성별, 성명, 사진 등)를 기초로 보호시설에 인계되거나 미아로 신고된 아동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상태(5만7천620명 디비화 2003년 9월 기준). 그러나 미신고복지시설에 있는 아동은 정부의 관리감독이 부재하여 기초적인 신상정보조차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주봉 씨는 "인가복지시설의 경우에도 보호아동에 대해 인적사항이 담긴 아동카드를 작성해서 '어린이 찾아주기 종합센터'로 보내는 일이 권고사항"이라고 말한다. 강제사항이 아니다 보니 지금 구축되어 있는 '어린이 찾아주기 종합센터'에서는 모든 미아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신고시설이나 미신고복지시설에 있는 무연고 아동에 대한 현황 자료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권운동사랑방 강성준 씨는 "당장이라도 정부가 미신고복지시설에 가서 아동 인적사항을 파악하여 기본적인 신원파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개 미신고복지시설의 경우 시설생활자들의 명단 작성 및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점이 공통의 문제로 지적돼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아를 찾기 위해 부모가 생업을 전폐하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신고·미신고복지시설을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신고·미신고복지시설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서 최소한 시설생활자 명단이라도 주기적으로 작성·관리할 수 있게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04년 1월 기준) 전국적으로 아동관련 미신고복지시설은 134개이며 1천767명의 시설생활 아동이 존재한다.

지난 2001년 '유전정보 이용에 관한 시민배심원제 정책권고(안)'을 보면, 배심원들은 유전정보를 이용한 미아찾기의 대의는 인정하나, 이러한 정책이 미아 찾기 사업에 최우선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명한 바 있다. 배심원들은 미아발생에 대한 예방적 노력과 시설의 관리감독이 매우 열악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유전자 디비 도입이 최우선 과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기반한 미아찾기 시스템의 문제점과 대안이며, 그 과정에서 유전자 디비 구축의 문제가 논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