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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겨울잠 깨워야 할 법사위 계류 법안 ④ -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기초법 개정안, 빈껍데기 전락 우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의 제정은 IMF 위기 이후 최소한의 생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던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헌법상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최초로 명시한 법률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기초법이 빈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법이라는 지적이 시행 초기부터 끊이지 않았다. 기초법이 제정된 바로 그 해에도 생활고로 자살한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2002년 3월에는 장애인권운동가로서 정부의 비현실적인 빈곤정책에 치열하게 저항했던고 최옥란 씨가 아이의 양육권과 26만원의 생계급여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다 자살을 시도한 지 1개월만에 끝내 목숨을 잃었다.

최근에도 '생계형 자살'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타살에 의해 희생된 사람의 수가 1시간에 1.5명꼴(경찰청 통계)로 추산되고 있다.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할 정부의 의무가 유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어진 죽음의 긴 행렬은 기초법의 대폭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번 16대 국회에서 실질적 개선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재 국회 법사위원회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회부된 기초법 개정안이 계류중이다. 지난해 10월 참여연대의 기초법 개정 청원과 김명섭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3개의 개정안이 잇따라 제출되자, 보건복지위는 이 안들을 통합해 기초법 개정 대안을 만든 뒤 12월 17일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기초법의 문제점을 소폭 수정하는 데 그쳤지만, 부양의무자의 범위를 "1촌 이내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좁히고 수급권자의 가구유형 등을 고려하여 최저생계비를 정하도록 해 실질적으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빈곤층은 물론, 실제 소득이 없는 노인이나 아동이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나 보건복지위 개정안을 넘겨받은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는 이 안의 자구체계 심사에 그치지 않고, 지난 7일 열린 회의에서 개정안의 핵심이었던 부양의무자 관련 조항을 직접 수정해 수급권자의 범위를 오히려 좁혀버렸다. '생계를 같이 하는 2촌 이내의 혈족'을 부양의무자의 범위에 추가해 수급권자의 범위를 다시 축소시킨 것. 또한 법안심사소위는 부양의무자 관련 조항의 시행시기도 '2004년 7월'에서 1년 뒤인 '2005년 7월'로 연기했다. 이에 따라 최저생계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도 과도하게 넓은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권자가 되지 못하거나 수급권자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분리 생활해야 하는 문제가 되풀이되게 됐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사회인권팀 김다혜 간사는 "보건복지위 개정안이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최소한 부양의무자 범위라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가졌는데 무용지물이 됐다"며 안타까워하면서 "2월에 있을 임시국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의 원안대로 부양의무자 기준과 시행시기가 교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처럼 국회 법사위에서 기초법 개정안이 오히려 개악되고 있는 사이, 지난해말 보건복지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2004년 세부시행방안'을 발표하면서 빈곤층의 현실을 또 한번 외면했다.

보건복지민중연대 윤수정 사무국장은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할 때의 환산율이 여전히 높아 수급권자 선정기준에서 사람들이 탈락하거나 생계비가 낮게 측정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으며, 최저생계비도 겨우 3.5% 정도 인상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윤 사무국장은 또 "정부는 수급권자 수를 140만에서 150만 정도로 파악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빈곤계층을 500만에서 800만까지로 잡고 있다"며 "그럼에도 정부가 예산을 낮게 책정하고 엄격한 수급권자 선정기준을 바꾸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실제 빈곤층의 수를 파악하여 대책을 세운다기보다는 수급권자수를 현 상태로 유지하거나 줄이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냐"며 꼬집었다.

기초법 개정안이 법사위 전체회의나 본회의에서 보건복지위 원안대로 통과되더라도 대폭적인 법·제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빈곤문제의 해소는 요원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