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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미국의 생체정보 채취와 '경찰국가'의 세계화

미국 공항이다. 외국인들은 긴장된 얼굴로 심사대 앞에 선다. 전자장비에 양손 검지를 번갈아 대고 나면, 디지털카메라가 얼굴을 찍어간다. 이렇게 수집된 디지털 지문과 사진은 모두 출입국정보 데이터베이스에 모인다. 테러용의자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라지만, 명단과 대조하고 난 후에도 폐기한다는 말이 없다. 도리어 미 국토안보부는 물론 중앙정보국, 연방수사국 등 비밀 정보수사기관들끼리 공유한다.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누가 열람하고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 길이 없다. 미국 땅을 밟은 자, 확실한 족적을 남기는 셈이다.

내년 말이 되면 육상 국경 검문소까지 포함해 미국을 향한 모든 통로가 이렇게 지문과 얼굴 정보를 인식하는 전자감시장치로 무장한다. 유럽인 등 이번 조치에서 제외된 사람들도 올 10월부터는 예외일 수 없다. 미국에 들어갈 때 생체정보를 담은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미 입국 비자와 여권에 사진과 지문 등이 입력된다고 한다. 생체 정보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토안보부는 자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예약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정보까지 사전에 넘겨받아 관리하고 있다. 탑승객들을 위험도에 따라 미리 심사, 분류하겠다는 목적이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우린 알 수 없다. 다만 특정 사람들을 위험하다고 분류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발상임은 분명하다.

미 정부의 시각에서 보자면, 외국인들은 잠재적 범죄자일 뿐이고 얼굴·지문을 비롯한 자기정보에 대한 통제권이니 신체의 자유 따위는 거추장스런 것에 불과하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는 '주문'이 되어있다. 하지만 초강대국, 미국 땅을 밟기 위해선 자유의 희생쯤 감수해야 하는가. 벌써부터 생체여권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한국정부로부터 흘러나온다. 자신의 지문을 국가기관에 헌납하는 데 익숙한 우리 국민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인가.

용감하게도, 지난 7일 미국 출장을 앞둔 한 회사원이 미국의 최근 조처에 대해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이 참에 대테러를 명분으로 한 개인정보의 수집, 해외정보 교류에 대한 분명한 인권적 원칙을 세워야 한다. 미국을 필두로 전세계가 경찰국가의 극한을 향해 치닫는 반동의 시대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전국민 지문날인 제도에 대해서도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