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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죽음과 침묵


한 노동자가 차가운 냉동고 속에 누워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 이용석. 그가 몸에 불을 붙이고 죽은 지 어느새 한달 가까이 됐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는 뒷짐만 지고 있고, 노동자들의 속앓이는 계속되고 있다.

이용석 씨의 요구는 '비정규직 철폐'였다. 아주 예외적으로 일시적인 일이 아닌 다음에야, 노동자를 물건처럼 썼다 잘랐다 하는 '비정규직'이란 고용형태가 비인간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고유업무를 갖고 똑같이 일을 하는데도, 매년 새로 계약서를 써야 했고 적은 임금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이들의 임금은 인건비가 아닌 재료비로 책정됐다. 관리자들은 '태생이 다르다'며 노골적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용석 씨는 "우린 마치 인간이 아닌 재료처럼, 필요한 기계로만 인식되어 있다"고 이러한 현실을 한탄했다.

이는 다름 아닌 비정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노동부 산하기관, 근로복지공단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곳에서 고용보험, 산재보험 업무를 보는 노동자 중 32%가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기본 업무량이 과거보다 훨씬 늘어 만성적인 과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럼에도 공단 측은 신규 채용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하고 현재의 비정규 노동자도 정규직화하라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시간만 끌고 있고,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노동부는 나몰라라다.

지난달 29일 노동부장관 등이 1주일 안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연내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깜깜 무소식이다. 그들의 시계는 우리와 다른 것인가. 노동자 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부터 비정규직을 착취하고 있는데야 이미 말은 다했다.

방법은 한가지다. 정부부터 노동자에게 '정규', '비정규' 딱지 붙여서 줄 세우고 갈라 치고 차별하는 정책을 버려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 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가 정부의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냉동고 속 주검은 편안히 흙 속에 묻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