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특별 기고] 불완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집행위원장

파견법 5년, 눈물의 역사


지난 1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시행 5주년을 맞았다. 본지에서는 지난 5년간 이 법이 가져온 폐해가 무엇인지를 김혜진 씨를 통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나는 분노 없이 파견법 5년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97년 노동악법이 통과되었을 때만 해도 내 관심은 '정리해고제'에 있었지 이름도 생소한 '근로자파견제'에 있지 않았다. 98년 7월 1일 파견법이 시행되고 나서 2년이 지난 2000년에 와서야 나는 자본가들이 왜 93년부터 이 법을 만들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지, 또 96년말 왜 날치기까지 하면서 이 법을 통과시키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파견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어처구니없게도 그 이름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었다. 자본가와 정권은 이 법이 만들어지면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어하는 전문가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고, 2년이상 된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으며,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규제할 수 있으니 1석 3조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지난 파견법 5년 동안 우리가 본 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일단 파견법에 의해 정규직 일자리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사무보조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노동자들, 쉴새 없이 전화에 매달려 있는 텔레마케터들, 나이 많은 청소용역 아주머니들, 간병인들, 홀대받는 운전직들이었다. 이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어야 할 그 자리에서 정규직의 반도 안 되는 임금으로, 게다가 자신의 임금의 일부를 파견회사에 헌납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이미 이런 일자리에서는 정규직을 뽑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견직이 된 노동자들이다.

또 2년이상 된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로 쫓겨났다. 방송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왔던 운전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채용을 회피하는 방송사측에 의해 해고당했다. 간병인으로 일해왔던 길병원 제니엘 파견노동자들도 2년이 되기 하루 전, 자신의 유일한 생계수단을 박탈당했다. SK텔레콤 노동자들의 경우 파견에서 1개월짜리 계약직으로, 또다시 파견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 이리저리 다른 회사들에 고용계약서가 팔려나갔다. 지금도 파견노동자들은 2년에 한번씩 해고 당한다. 삶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심해졌다.

불법파견을 규제할 수 있다고 떠들었으나 오히려 불법파견은 더욱 성행하고 있다. 대구 성서공단의 아세아시멘트 노동자들, 현대 모비스 노동자들, 미포조선 노동자들, 대우조선 노동자들, 한진면세점 노동자들…. 셀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불법적인 중간착취로 고통받아도 노동부는 불법을 제대로 조사할 생각도 않고, 불법파견이 명백해도 눈감아주고, 설령 불법파견 판정이 나와도 노동자들 계약해지 해버리면 그만이다. 누가 노동자들을 중간 착취할 권한을 주었는가? 누가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폐기처분할 권한을 주었는가?

이런 인신매매에 재미를 붙였는지, 자본가들은 이제 노동자들을 파견으로 쓰는 것도 모자라 파견업체를 차리려고 난리다. 중간착취까지 해서 돈을 더 벌어볼 심산이다. 맨파워 같은 외국계 파견회사도 눈독을 들인다. 자본가들에게 파견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파견노동자들을 일을 시키면 자신은 사용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이름만 달랑 있는 파견업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 된다. 노동자 한 사람씩 정규직으로 고용할 때 들어가는 임금보다 엄청난 싼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부린다.

그러니 자본가들은 26개 대상업종만 파견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현행법이 문제라고 아우성친다. 빨리 모든 업종에 파견을 허용하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업종과 기업의 규모와 기업의 형태에 상관없이 노동자들은 2년살이 노예생활을 감내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이미 파견법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속칭 '공익위원'이라는 자들이 불법파견도 합법파견에 준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그렇다면 도대체 합법과 불법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앞으로 파견법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논의를 하자고 말한다. 남의 생존을 놓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재단하는 자들은 파견노동자들의 고통을 똑똑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미 노동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는 것이다.

또한 노사정위원회의 논의와 별도로 '경제자유구역법'을 통과시키면서 경제자유구역 안에서는 파견법 대상 업종을 확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회사가 하고 있는 업무에 '전문'이라는 말만 붙일 수 있다면 이제 마음대로 파견노동자들을 쓸 수 있다.

또한 파견노동자들이 2년마다 한번씩 짤리는 것이 안타까우니, 이제 3년으로 파견기간을 연장하자고 한다. 자기들도 2년마다 노동자들을 교체하려니 그동안 노동자들을 길들여놓았던 것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3년마다 짤리든, 2년마다 짤리든 노동자들의 신세는 하루살이 신세다.

지하철에서 예쁜 웃음을 지으며 "우리는 보보스 파견사원"이라고 외치는 광고 속의 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웃음 뒤에 숨어있는 파견노동자들의 눈물을 본다. 인재를 키운다고 떠들어대는 '맨파워'사의 광고에서 낮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읽는다. 그리고 97년 총파업투쟁 때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막지 못하고, 그것이 우리사회에서 홀대받아왔던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어 그들이 더 깊은 고통의 수렁으로 빠질 때,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외면해왔던 우리들의 뻔뻔함도.

그래서 파견법이 시행된 지 5년이 되는 지금 '파견법 철폐하라고' 목놓아 외치는 방송사 비정규노조 주봉희 위원장님과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라'고 외치는 인사이트코리아 동지들의 길을 따라서 우리 노동운동 진영 모두가 함께 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우리가 책임져야 할 우리의 과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