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3·8 세계 여성의 날 특집 ②> 여성과 전쟁

"전쟁은 여성에 대한 일상적 폭력의 연장"

세계여성의 날 95년의 역사는 전세계 여성들이 군사주의와 전쟁에 끊임없이 저항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1914년 1차세계대전이 시작된 해에 열린 세계여성의 날에는 각국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제국주의전쟁에 항의했고, 이어 1915년 멕시코와 1917년 이탈리아, 1918년 오스트리아, 1936년 스페인, 1979년 칠레, 1988년 필리핀에서는 군부독재정권을 향한 여성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974년 3월 8일에는 베트남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여성 베트콩들이 미국의 침략에 반대하는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맞는 올해 세계여성의 날에도 전쟁에 반대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거센 저항이 예고되고 있다. 여성들은 이라크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할 때부터 전쟁을 막기 위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실천들을 벌여왔다. 특히 전세계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며 전쟁의 공포로 휩싸인 이라크 땅으로 떠났다.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지난 5일 여성해방연대와 각 대학 여성단위들이 모여 개최한 '이라크 전쟁, 여성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는 여성주의에 기초한 반전평화의 의미에 관한 열띤 논의가 전개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여성해방연대의 무영 씨는 전쟁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상적 억압과 폭력이 극단적으로 증폭되는 상황'으로 해석한다. "전쟁 속에서 여성의 육체는 자국 남성의 사기진작을 위해, 점령국 남성이 점령당한 국가를 모욕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이용되고 착취당한다. 그러나 그러한 폭력은 여성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져온 폭력의 연속선 위에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러한 무영 씨의 지적은 우리 역사에서도 결코 낯설지 않다. 일제 하에서 조선의 수많은 여성들은 일본군의 성노예로 유린되었고, 일본 여성들 또한 미래의 건강한 일본제국의 군대를 생산하고 길러내는 우생학적 전략에 동원된 바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비단 전쟁시기에만 이런 폭력에 희생되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긴 역사 속에서 한 순간도 그러한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개발독재시기에 여성의 몸은 이른바 '매춘관광'이라는 것을 통해 해외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상품화되었고, 전시가 아니어도 기지촌 여성들의 몸은 미군의 국내주둔에 대한 대가로 바쳐지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남편의 주먹에 피멍이 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그 폭력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단지 '여성이 전쟁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하는 것으로 여성의 반전운동을 바라보는 것은 모든 일상적인 억압과 차별에 맞선 저항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여성들의 반전평화운동을 퇴색시킬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영 씨는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말에서 '여성'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전쟁'을 단지 무력분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평화를 사랑한다거나 여성성의 본질이 평화친화적이기 때문에 여성이 전쟁을 반대한다고 보는 관점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한 주장들은 지금까지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사회적 성역할을 더욱 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쟁'을 '총성이 울려 퍼지는 무력분쟁 상태'로만 규정하지 않고 일상적 폭력이 극대화된 상태라고 정의할 때, 비로소 평화의 개념도 단지 '총성이 멈춘 상태'를 넘어 억압받는 약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여성,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일상적인 폭력과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생존 현장은 전쟁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무영씨는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다른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기반으로 기존의 권력관계에 저항하고 이를 변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한 여성주의자들은 '당면한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단지 반전평화시위를 통해 이라크 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현지 이라크 여성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이라크반전평화팀으로 현지에 가있는 여성주의자들은 개전이 되면 난민구호활동을 통해, 현지 여성들과의 연대 위에서 전쟁의 잔혹한 실상을 알려내고 그와 동시에 그 사회의 억압적 질서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를 모색할 계획이다.

한편, 반전평화라는 하나의 목소리 속에 다양한 입장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영 씨는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결집해 전쟁을 막는 것이 중요한 만큼이나, 반전평화의 운동과정에 평화적이고 변혁적인 가치를 담아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며, "반전을 이야기하면서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이 차별 받는 것은 당연하다'거나, '정신대는 민족의 수치니까 떠벌리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반전평화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집단들과는 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여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은 일상이라는 전쟁 상황과 그것이 극도화된 무력분쟁이라는 전쟁 상황 모두에서 이용되고 착취되고 학살당해 왔다. 여성들이 이러한 일상화된 구조적 폭력을 넘어 적극적 의미의 평화를 구성해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