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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환자들에 대한 '사형선고' 중단하라


백혈병 환자들의 처절한 농성이 오늘로 17일째를 맞았다. 이들의 요구는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약값을 환자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리라는 것이다. 지난달 정부가 결정한 글리벡의 약값은 1알에 무려 2만3천45원이다. 환자들 대부분은 보험적용을 받지 못해 한 달에 최소 276만원을 약값에 들여야 한다. 보험적용이 되는 환자들도 약값으로만 많게는 124만원까지 써야 한다. 이같은 약값 결정은 환자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환자들은 엊그제 병든 몸을 이끌고 글리벡 제조사인 노바티스 사를 찾아갔다가 경찰에 강제진압을 당했다. 환자들은 모두 탈진 상태가 됐고, 혈관이 터져 병원에 실려간 이도 있었다. 노바티스 측은 환자들더러 '왜 남의 집에 와서 행패냐'고 했다 하는데, 정작 '행패'를 부린 건 사람의 목숨을 흥정 대상으로 삼는 노바티스가 아닌가. 노바티스는 글리벡 시판 1년 8개월만에 전세계에서 8천9백억여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매출액을 올렸다고 한다. 비싼 약값을 고수한 결과다. 글리벡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와 세금, 환자들의 탄원 등 공공의 노력으로 탄생한 약인데, 노바티스는 특허권을 방패삼아 세계 백혈병 환자들의 돈과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를 갈취하고 있는 셈이다. 보험적용이 되는 환자들에게 약값 일부를 지원해주겠다는 건 위선에 불과하다.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가 2001년 스스로 정했던 금액보다 30%나 인상된 약값을 정한 것은 제약자본의 탐욕 앞에 무릎 꿇고 환자들의 생명을 내팽개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돈이 없으면, 죽음을!" 이것이 정부의 보건 철학이란 말인가?

우리 헌법과 보건의료기본법은 '모든 국민은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아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윤 추구에 눈먼 제약회사의 횡포에 약 먹는 걸 포기하거나 빚을 내 약값을 충당해야 하는 환자들은 국민이 아닌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글리벡의 약값을 낮춰라. 나아가 모든 아픈 이들이 돈이 없어 약을 먹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근본적으로 약의 유통과 가격 산정 기준을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환자들의 생명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째깍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