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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주노동자 자녀들에게 희망을

'불법'의 이름으로 짓이겨지는 씨앗들


몽골학교에 다니는 40여명의 아이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친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 아이들이 아니다. 바로 불법체류자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오직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부여된 신분이다.

현행 국적법 2조 1항은 '출생한 당시에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에 대해서는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이 한국인이면 제한적이지만 그 자녀에게도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하지만 부모 모두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경우에 대해서는 전혀 구제조항이 없다. 이 땅에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은 법적으로 '무국적' 신분이 되는 셈이다. 부모와 함께 한국으로 이주해온 아이들도 대부분 부모를 뒤따라 '불법'의 신분이 된다.

이렇게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태어난 무국적의 아이들' 혹은 '이주해서 불법의 신분이 된 아이들'은 어른들도 견디어 내기 힘든 '불법'의 딱지가 붙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교육권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 의료보장 서비스를 비롯한 모든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이들은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수 없고 아파도 마음놓고 병원에 갈 수 없다. 단지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야 한다.<본지 5일자, 13일자 참조>

사실 이 때문에 일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결혼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안양이주노동자의 집 이금연 관장은 "일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부부가 이런 현실 때문에 일부러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결국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나름대로 궁여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태어난 4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있는 한 몽골인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만 한국에 있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가족 모두가 다시 몽골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한다. 물론 아이들만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몽골학교에 다니던 오양가(15)는 부모와 함께 한국에 왔다가 교육 문제 때문에 다시 혼자서 몽골로 돌아갔다. 혹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이 빨리 커서 함께 돈을 벌어주기를 희망하기도 한다. 몽골인 오동투야 씨는 "함께 돈을 벌어서 본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하는 부모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도달하는 곳은 어디인가? 여행차 몽골을 다녀온 적이 있는 이정훈 씨는 "몽골에 갔다가 한국에서 살다온 이주노동자의 자녀를 본적이 있다"며 "이들 중 일부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몽골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혹은 한국에서 방치된 채로 지내다가 범죄를 저질러 추방되는 경우도 있다. 몽골학교에 다니는 빠담지체크의 사촌오빠(15)는 얼마전에 자전거 절도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결국 그 아이는 홀로 강제출국될 수밖에 없었다.

이주노동이라는 것이 자본주의 하에서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라면, 정부는 하루빨리 이들의 신분을 합법화하고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 권복순 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현재 국적은 물론 자신의 정체성마저 혼란해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보장하는 것만이 문제해결의 열쇠"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