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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위, '입장 없다'며 인권현안 왜곡

인권위 영상물, 병역거부권 삭제…나레이션도 7곳 수정


지난 10일 인권위 주관으로 열린 세계인권선언일 기념식에서 올해 인권현안을 되짚어보는 '인권-2002 인권현안'이 상영됐다. 이는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 등 올해 6개의 인권사안으로 구성된 총 10분 분량의 영상물. 11일 새벽 이 영상물의 연출자인 최하동하 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국가인권위원회, 그들의 선택'이라는 글을 올려 제작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최 씨에 따르면, 인권위는 올해 인권현안을 7개로 선정해 최씨에게 제작 의뢰했고 지난 5일 가편집이 완성돼 사무총장 및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내부 시사회를 열었다. 인권위는 최종판으로 △7개 인권현안 중 병역거부권 단락을 삭제할 것과 △나레이션 중 7개 부분을 수정, 편집할 것을 요구했다. 이유는 "법무부장관 같은 이가 본다고 해도 무리가 없는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인권위 남규선 공보담당관은 "병역거부권은 인권위가 아직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안이며 구성이 오태양 씨 한 사람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수정할 시간이 촉박해 삭제를 요청했다"며, "법무부장관에 대한 언급은 단지 예를 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평화인권연대 최정민 씨는 "병역거부권은 인권위가 마땅히 조사와 구제를 담당해야 할 인권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들먹이며 외면하는 태도에 실망스럽다"고 일침을 놓았다. 또 "독립성을 부르짖는 인권위가 작품의 객관성을 핑계삼아 법무부 운운하는 것도 그렇다"며 씁쓸해했다. 이어 "병역거부에 대해 간략히 묘사한 2분 정도의 영상마저도 삭제한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허탈해 했다. 인권상황을 올바로 봐야 할 인권위는 결과적으로 올해의 인권현안을 왜곡시킨 셈이 됐다.

한편, 미장갑차 여중생 사망 무죄평결 규탄시위 중 머리를 다친 남자 부분에서 애초의 나레이션은 "공권력은 폭력의 수위만 높여가는데…"였지만, 인권위는 "국가의 따뜻한 손길은 멀기만 한데…"로 수정했다. 에필로그의 "사회적 약자의 소외는 계속된다… 성과보다 과제가 더 많았던 시간 다시 출발선에 선다…"는 "… 소외된 이에게 깊은 애정을 나누는 국민들, 인권은 바로 그곳에 있다…"로 변경됐다. 국가폭력의 책임을 교묘히 비켜가고,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을 개인들이 사랑을 베풀면 되는 문제인양 본질을 변질시켰다는 비판을 인권위는 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