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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고문방지,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라

‘피의자 심문시 변호인 참여권 보장’ 등 검찰과 법무부의 고문방지 대책이 주목받는 가운데, 지난 7일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가 유엔총회에서 채택됐다는 소식이 조용히 흘러갔다. 독립적인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기구가 각 나라의 구금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규정한 ‘선택의정서’는, 84년 유엔이 채택한 고문방지협약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17년만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결실이다.

멀리 뉴욕에서 채택된 낯선 이름의 문서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피의자 심문시 변호인 참여권 보장’이란 고문방지 대책은 이미 96년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한국정부에 권고했던 내용이었다. 선택의정서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음을 말해준다. 당시 한국정부 대표단이 “변호인의 참여권 보장은 수사의 지연으로 허용할 수 없다”라며 국제기구의 권고를 완강히 거부하지만 않았던들, 오늘날 고문치사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번 선택의정서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 정부의 태도는 반대에서 찬성으로 선회하는 곡예였다. 결과적으로 유엔총회에서 미국을 필두로 해 반대표를 던진 몇 나라에 끼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법무부의 완강한 고집으로 앞서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한국정부가 선택의정서에 반대표를 던졌던 만큼, 이번 찬성표에 법무부의 입이 불거져 있음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구금시설 내의 인권상황에 자신이 없는가? 그럴수록 구금시설은 열려야 한다.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의 연구용역으로 진행되고 있는 구금시설 의료실태조사에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잘못된 고집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 국가인권위가 실지조사를 강화하고, 국제기구가 방문조사를 통해 고문방지를 위한 구조개선을 권고하고, 또 민간단체가 접근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때, 구금시설에서 인권침해의 연기가 피어날 틈이 없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고문에 대한 비난과 재발방지를 입으로만 하지말고 고문방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번에 채택된 선택의정서는 20개국 이상이 비준해야 국제법으로 발효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주춤거리지 말고 이를 비준하고, 구금장소에 대한 국제적인 감시제도의 확립에 기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