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주일영사, "조선적이 제일 싫다"

한국엔 수모, 일본엔 협박…조선적 동포 이중차별


47년 일본 정부는 외국인등록령을 시행, 재일동포들의 국적란에 '조선'이란 기호를 일괄 기입했다. 당시 지구상엔 '조선'이란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조선적'이란 조선 국적이 아닌 한반도 출신을 가리키는 말에 불과했다. 현재 재일동포 중 한국적은 52만, 일본적은 54만, 조선적은 15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조선적 재일동포 중 일부는 북일수교 후 북의 국적을 취득하길 원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한반도 통일 이전에 남과 북 어느 국적도 취득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왜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느냐", "남편직업이 대학교수라면 다 알텐데, 무식하게 왜 조선적을 가지느냐", "조선적은 공산주의 국적이지 않느냐", "북한은 납치를 하는 나란데, 왜 그 나라 국적을 가지느냐", "나는 총련 활동가 아닌 사람이 조선적인 것이 제일 싫다"... 지난 9월 27일 조선적으로서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요꼬하마 한국영사관을 찾았던 ㅂ씨는 영사 최씨로부터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ㅂ씨가 조선적이 된 것은 부모의 결정이었지만, 지금까지 조선적을 바꿔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ㅂ씨는 또 '한국이란 나라가 생김으로써 한반도가 2개의 국가로 갈라졌다'며 이를 인정하기 싫어 여전히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국적을 바꾸라'는 영사 최씨의 일장 연설은 조선적 ㅂ씨에겐 일종의 수모였다.

영사 최씨의 모욕적인 설교가 1시간 정도 이어진 후에야, ㅂ씨는 '여행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한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영사 최씨가 ㅂ씨에게 한 마지막 말은 "2번은 (발급) 안 해 준다"였다. 결국 ㅂ씨의 여행증명서는 2일 발급됐고, ㅂ씨는 11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는 지난 11~14일 진행됐던 '재일조선인 서울방문 및 청년결연사업'(아래 방문사업)의 마지막 날 ㅂ씨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ㅂ씨 등 재일동포들은 이번 한국방문 기간 동안 서대문형무소, 나눔의집, 통일광장,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찾아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다.

방문사업을 주최한 재외동포교류단체 KIN(지구촌동포청년연대) 손동주 방문기획단장은 "영사 최씨의 발언은 지금까지 조선적을 유지해 온 한 사람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뒤흔드는 인권침해"라며, "역사의식을 결여한 무지의 소치"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어 "조선적들이 한국에 입국할 땐 누구나 국적전환 요구를 받고 있다"라며, "한국정부는 국적전환 요구를 즉각 중단하고 자유왕래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ㅂ씨는 북일정상회담 이후 과거 북의 일본이 납치문제로 인해 재일동포들이 협박과 폭언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고 전했다. 조선학교에는 지금도 하루에 수십통씩 협박전화가 걸려오고, 심지어 일본경찰이 학생들의 등․하교 길을 경호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은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심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ㅂ씨의 답변은 한국정부의 국적전환 요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