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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시효배제입법, 지체될 수 없다

최종길 의문사 사건의 진상이 확인되면서, 가해자 처벌을 둘러싼 공소시효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지게 됐다. 이미 3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공소시효가 완료됐으나, 국가권력 스스로 사건을 은폐해 왔다는 점과 범죄의 반인도성에 비춰볼 때, '시효'라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은 분명 정의롭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16년이 지나 청송교도소 박영두 사망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도, 수지김 조작간첩사건의 진실이 14년만에 드러났을 때도, 우리는 번번이 공소시효의 '벽'에 부딪혀 왔다. 모든 범죄에 대해 일률적으로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현행법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실정법 앞에서 희희낙락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때문에 '공소시효배제운동 사회단체협의체'를 비롯한 각계에서는 서둘러 공소시효 배제 입법에 착수할 것을 촉구해 왔다. 최근 협의체는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와 국가범죄 행위의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특례법을 입법청원했고, 24명의 국회의원들도 공소시효 배제조항을 신설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국회 차원의 공론화와 입법시도는 더 이상 미뤄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시효배제 법률을 만드는 데 있어, 다양한 반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된 마당에, 굳이 처벌할 필요까지야 있느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처벌가능한 일에 관용을 베푸는 것과 처벌의 권한조차 갖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바람직한 것은 법제도적으로 처벌의 근거를 분명하게 남겨두는 것이다. 그것이 유사한 인권침해행위의 재발을 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사죄와 피해자의 용서 여부에 따른 '관용'은 그 뒤의 일이다.

법률을 만들더라도 과거 사건에까지 소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지다. 그러나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것은 기존의 범죄행위를 다시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죄형법정주의의 대상이 아니다. 2차대전 후 전범의 단죄를 위해 국제사회가 어떻게 소급입법 논란을 극복해 나갔는지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권력이 은폐해 왔던 진실이 언제 또 밝혀질지 모른다. 그때마다 '시효'를 핑계로 면죄부를 부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작업에는 한시의 지체도 허용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