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테러빙자, 집회에 고무탄 사용

법적 근거 애매, '테러상황' 경계 모호


'일부 과격시위에 고무탄 등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경찰의 입장이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9일 경찰청 경비국 경비2계장은 시위대가 △사재폭탄을 준비한다거나 △화염방사기로 건물을 방화한다거나 △도검으로 살상할 우려가 있는 등 "일반적인 시위를 넘어서 테러에 버금가는 상황이 발생하면 고무탄을 사용할 수 있다"며,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위진압시 고무탄 사용 위법

이와 관련 사회진보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김도형 변호사는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시위진압시 고무탄을 사용하지는 못한다"며, 과격시위에 고무탄을 사용하겠다는 경찰 쪽 발상의 위법성을 지적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의3에 따르면, 불법시위의 진압시 경찰이 사용할 수 있는 장비는 분사기와 최루탄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이에 대해 경비2계장은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에 의해 경찰관은 직무수행중 경찰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며, "고무탄은 인가된 진압체포장비"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경찰청훈령 제279호 경찰장비관리규칙에는 고무탄을 쏠 수 있는 다목적발사기가 대테러장비로 분류되어 있다. 대테러장비는 국가 대테러 업무수행 등 경찰특공대의 임무수행에 사용되는 특수장비로, 불법시위에 대해 일선경찰이 사용하는 진압장비와 엄격히 구별된다.


테러상황 판단 자의적

결국 '테러상황'에서 경찰이 고무탄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시위현장'에서까지 고무탄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이에 경비2계장은 "한국에서의 시위는 일반적으로 아무리 과격해지더라도 화염병과 투석 시위 혹은 쇠파이프 시위"라며, "이 정도 상황에서 고무탄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고무탄 사용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과격시위와 테러상황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사실은 지난 3월 북파공작원 출신 2백여 명이 벌인 격렬 시위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당시 광화문 4거리를 점거한 채 화염방사기가 설치된 LPG가스통에 불을 붙이며 자신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했다. 집회에서 한 연사는 식칼로 자신의 가슴과 왼팔을 그어 자해하기도 했다. 화염방사기와 도검(식칼)이 등장한 이날 집회는 경찰 쪽에서 우려하는 테러상황과 흡사했다.

그런데 당시 정말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을까? 이에 대해 북파공작특수임무동지회 노세현 씨는 "진짜 테러를 한다면 아무도 모르게 하지 그렇게 대놓고 하겠냐"며, "우리들의 요구를 남한테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 뿐이었다"고 답변했다. 이어 "경찰이 과격시위를 뿌리뽑겠다고 고무탄을 사용한다면 결과는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며, 고무탄 사용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국민중연대 주제준 조직국장은 "집회가 과격해지는 문제는 고무탄이 아니라 총을 가지고 나와도 해결되지 않는다"며, "집회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원인을 없애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시했다.


고무탄 운운은 집회자유 위축

한편, 민주노총 권두섭 법규차장은 경찰의 '고무탄 사용' 이야기에 대해 "일부 시위에서 벌어졌던 돌발적인황을 빌미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테러의 우려가 있으면 고무탄을 사용하겠다'는 경찰의 위협만으로도 통상적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위축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봉쇄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을 상기시키며, "이번 건도 그런 차원에서 기획된 것 아닐까"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지난해 6월부터 검찰은 집회 피해자들의 민․형사소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집회 주최자에게 책임을 물어 왔다. 같은해 12월 경총은 확성기 등의 소음을 규제하고 사무실 밀집지역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입법청원을 했다. 또한 정부는 이달초 어린이 보호를 명분으로 시위 현장에 어린이 동행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