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정희진의 인권이야기

하리수와 오태양


최근 우리사회에서 인간의 성생활에도 인권 개념이 적용되면서, 트랜스 젠더가 대중 스타가 되기도 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거부감도 점차 희석되는 듯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수 천년 동안 섹슈얼리티 억압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성폭력 당한 여성, 매춘 여성, 레즈비언들이 인권을 외치기보다는, 성폭력 가해자나 성을 사는 남성들이 고소를 당하면 '가해자의 인권'을 더 주장하는 사회이다. 아무리 '혁명'적인 사건이 발생해도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사유 구조가 없다면, 그것은 진보가 되지 못한다.

하리수의 등장은 한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사건이었다. 하리수는 타고 난 성(sex)이 사실은 전혀 '생물학'적이지 않으며, 본질적인 것도, 고정된 것도 아님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하리수는 남성의 성 역할을 거부함으로서 고통받으며 사느니 아예 다른 성을 선택했다. 그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서 여성성에 안착했고 여성들에게도, 남성들에게도 받아들여졌다. 신발이 맞지 않는다고 발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하리수 현상은 이렇게 해석되지 못했다. 오히려 트랜스 젠더든 원래 여자든 '여자는 일단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는 기존 담론을 더 강화시켰을 뿐이다.

트랜스 젠더는 페미니즘이 필요 없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다. 여자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남자들도 있는데, 생물학적 여성들이 자기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같은 트랜스 젠더라 해도 여성이 남성으로 성 전환한 경우는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남성들은 이전에 여자였던 남성을 자신과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여성들은 남자로서의 기득권을 버린 여자를 '존경'할 수 있다.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경고처럼, 남성의 여성스러운 행동은 남자를 망신시키는 것이며, 그런 남성은 집단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 남성들은 남성과 다른 성(여성, 게이, 성전환자, 장애인...)이 남성 범주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부장제 사회는 남성이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가 아니라, 남성이 非남성(성)을 처벌하는 사회이다.

하리수의 성역할 위반이 성공한 반면, 현재 양심적 병역 거부를 벌이고 있는 오태양은 폭력과 전쟁을 옹호하는 군대가기라는 전통적 남성 성 역할을 거부함으로서, 사회적 비난은 물론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상황이다. 오태양의 거부 투쟁이 '기피'가 된 것은, 특권층의 병역 기피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대 가기를 의무이자 정상 남성으로서의 권리, 혹은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여기는 남성 중심사회의 자체 모순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가기를 싫어하지만, 군대를 다녀옴으로서 얻게 되는 사회적 이익과 남성 연대는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사회는 유승준의 '기피'와 오태양의 투쟁을 구별하지 못한다. 성 역할 위반도 남성의 입맛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정희진은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가정폭력과 여성인권』의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