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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시그 노조, “파주에서 일하고 싶다”

노조혐오증이 부른 또 다른 장기파업


“파주에서 일하겠다는 것은 곧 노조집행부도 파주로 오겠다는 것 아니냐?” 시그네틱스 양수제 대표이사가 지난 8월 10일 시그네틱스 노조(위원장 정혜경, 시그 노조)와의 실무면담 과정에서 내뱉은 말. 그것은 분명 노조혐오증이었다. 이날 양 대표이사의 발언은 ‘파주공장으로 가서 일하겠다’는 노조의 요구와 ‘파주공장에서는 절대 안 시킨다’는 사측의 주장이 팽팽히 대립하며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24일 현재 파업 64일째.


반도체 조립업체, 시그네틱스

반도체 조립업체 시그네틱스는 66년 미국자본 필립스에 의해 세워졌다. 이후 거평그룹이 95년 인수한 후, 96~97년 2천억 이상을 투자하며 파주에 제2공장을 신설했다가, 98년 과다부채로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이때 시그 노조는 △임금동결 △상여금 반납 △주택자금 등 중단․축소 △퇴직금 누진제 폐지 △호봉승급 6개월분 반납 등 워크아웃에 따른 고통을 분담하고, ‘잉여인력 발생시 파주공장으로 배치전환한다’는 합의서를 사측과 체결했다. 한편 사측은 서울공장을 매각하여 부채를 갚고, 서울공장의 시설과 장비는 파주공장으로 이전한다는 약정서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체결했다.


이주불가자 모집, 사실상 인원정리

당시 노조원들은 ‘서울공장이 매각되면 자신들은 당연히 파주공장에서 일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의 소박한 바램은 지난해 6월 영풍그룹이 시그네틱스를 인수하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영풍그룹은 ‘서울공장 이전시 이주불가자로 지원하는 이들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평균임금의 600%를 지급하고 실업급여 혜택을 주겠다’면서, 2000년 11월 30일자로 이주불가자 모집공고를 냈다. 그러나 공장이 언제 어디로 이전될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먼저 이주불가자를 모집하는 것은 사실상의 ‘인원정리’였다. 이에 노조에서 강력히 반대했지만, 사측은 올해 4월까지 이주불가자를 계속 모집했다.

노조 임은옥 교육선전국장은 “당시 회사는 이주불가자 지원자에게 ‘당장 나가지 않으면 위로금도 없다’는 식으로 협박했다”며, “이때 반강제적으로 회사를 떠난 조합원이 1백8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안산공장행, 정리해고 수순밟기

영풍그룹의 인원정리 작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월 1일 영풍그룹은 서울 노동자들을 상대로 서울공장을 8월 이후 안산으로 이전한다고 통보하고, 안산에 곧바로 제3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안산공장의 규모가 서울공장의 1/3 수준이며, 사측이 안산공장에 대해 어떠한 투자계획도 없다는 것. 임 교육선전국장은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안산공장으로 가면 잉여인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이는 필연적으로 정리해고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9천여 평 부지의 파주공장은 6백70여 평의 유휴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정도 유휴공간이라면, 굳이 안산에 제3공장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 또한 올해 초까지 파주공장은 계속해서 사람을 뽑았기에, 사측의 결정에 따라 서울 노동자들이 파주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보인다.

이에 대해 사측은 △파주공장과 서울공장의 작업공정이 다르다 △파주공장의 유휴공간은 이미 투자계획이 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안산공장에도 투자를 하겠다는 식의 논지를 펴고 있다. 하지만 “안산공장으로 가면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가?” 라는 노조의 물음에 대해, 영풍그룹은 “그건 모르겠다”며 고용안정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 와중에 영풍그룹은 23일 서울 노동자 전원을 안산공장으로 전보 발령하고, 같은 날 노조는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파주로 가고 싶다”

시그네틱스가 파주이주 희망자를 전원 수용하는 것. 이것이 98년 워크아웃 상태에서 고통분담을 결의했던 시그 노조의 주요한 요구사항이다.

하지만 영풍그룹과 시그네틱스는 지난 6월부터 조합원 91명의 임금 50%와 조합비 전액을 가압류하고 있으며, 시그 노조 임행관 부지회장 등의 집을 가압류했다. 지금까지 파업투쟁에 폭력, 성추행 등을 일삼아 왔으며, 24일 아침에는 정혜경 지회장의 남편을 긴급체포하고, 지회장 등 간부 4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시그 노조는 오는 26일 산업은행본점 앞과 영풍그룹 본사 앞에서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영풍그룹의 노조혐오증이 계속되는 한 이들의 투쟁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