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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장여경의 인권이야기

표현의 자유는 포르노와 성폭력을 옹호하는가?


지난주에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주의자들이 모인 어떤 자리에서 인터넷 검열 반대 운동이 포르노와 성폭력을 옹호한다고 비판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인터넷 검열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포르노와 성폭력에도 반대한다. 이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인터넷내용등급제는 검열이다. 무엇보다 사실상의 인터넷 검열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시행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표면적으로는 자율이지만 허상이다. 자율에서 제외되는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인터넷에서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지정하는 기관이 바로 등급제를 시행하는 윤리위이기 때문이다. 윤리위가 사실상 제 기준대로 인터넷에 등급을 강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청소년유해매체물 등급이 달리면, 혹은 청소년유해매체와 관련이 없더라도 등급을 달지 않으면, 윤리위의 배포 기준을 내장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9월부터 대부분의 PC방에서 차단된다. 물론 윤리위의 말에 따르면 이는 ‘옵션’이다. 그러나 윤리위의 기준을 ‘디폴트’로 채택할 많은 학교나 도서관, 작업장에서는 차단될 것이다. 이것은 검열이다.

그런데 내가 일년간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포르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이다. 이럴 때 무척 답답해진다. 왜냐하면 검열 반대 운동이 포르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받는 상황 자체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반여성적이고 성폭력적인 포르노를 반대한다. 포르노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인터넷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적 국가 권력이 포르노를 없앨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매매춘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또한 나는 성폭력에 반대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이버 성폭력을 처벌하지 못하는 것은 현행법이 가부장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법으로는 신체적 접촉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여성의 성적 의사에 반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성폭력인 사이버 성폭력을 다룰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 문제가 인터넷에 대한 문제로 이야기되어야 하는가? 정부가 인터넷을 검열하면 포르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가 사라진다. 그것은 강압적인 경찰 국가와 마찬가지이다. 동네마다 구석구석 경찰을 세워두고 날마다 검문하면 성폭력이 사라질까?

인터넷 규제는 법에 따라 불법 정보를 규제하는 것이어야 하며 최소한도로, 명확한 기준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나와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검열에 대한 반대는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째서 포르노에 대한 반대가 인터넷 검열을 반대하는 데 혼란을 주는가. 어째서, 때로는 포르노에 대한 반대가 정부의 검열에 명분을 더해주는가. 표현의 자유가 포르노와 성폭력을 옹호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 자체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천한 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무척 슬프다.

(장여경 씨는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