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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라


지난 몇 년간 서민들의 이마엔 주름살이 늘어갔다. 고용이 불안하고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가운데, 높은 사교육비, 비싼 주거비와 의료비 등에 대한 근심이 겹을 이뤘다. 11일 발표된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최종견해는 이것이 곧 사회․경제적 인권의 박탈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런데 정부는 줄곧 보다 완전한 시장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인권, 특히 경제․사회적 권리는 유보될 수 있다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심지어 인권의 토론장인 제네바에서도 ‘노동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하는 정부다. 아마도 정부는 한국을 모범생으로 치켜세우는 IMF의 말은 국제사회의 유일한 평가인 양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분명 ‘착각’이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이번 권고를 통해, 경제회생과 시장경쟁력 향상이란 목표 속에 희생된 권리를 애도했다. 나아가 IMF와 구조조정에 대해 협상할 때, 사회권 조약의 가입국으로서 왜 사회권 보장의 의무를 고려하지 않았냐고 한국정부를 향해 준엄하게 꾸짖었다.

결국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경제 우선주의’에 숨이 막힌 사회권을 살릴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좌표의 문제이다. ‘파이부터 키우자는’ 발상은 이제 땅에 묻어야 한다. ‘특수한 안보상황, 문화적 전통’에 기대어 인권의 제한을 정당화하는 낡은 수법도 함께 관에 넣어야 한다. 교원과 공무원에 대한 국민적 존경심을 이유로, 파업권 및 노동3권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둥 6년 전의 논리를 똑같이 반복하는 비참한 상황을 이제는 바꿀 때도 되지 않았는가? 사회권의 ‘즉각적 실현’은 기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점진적 실현’이란 소극적 이행 원칙조차 이름 붙이기 어려운 현실에 정부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남북화해의 시대에, 여전히 많은 돈을 방위비에 쏟으며 사회보장 및 보건의료 분야에는 쥐꼬리만한 예산을 배정하는 모순된 현실도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정부는 어차피 겨우 5년에 한번 내는 보고서, 심사만 요령 껏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네바에서 정부가 내뱉은 사회권 보장 약속을 똑똑히 기억하는 눈과 귀가 있음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이번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유보 없이 이행함으로써 이 땅의 노동자, 서민,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난민, 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온전한 인권을 되돌려주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