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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인권'을 쫓아낸 '국민과의 대화'


지난 1일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5개 방송사의 전파를 탔다. 경제와 남북관계 등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피력됐으나 허기진 우리의 심정은 채워질 수 없었다. 더구나 어찌된 일인지 김 대통령의 단골 메뉴인 '인권'과 관련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당선자 시절부터 부르던 '지정곡'이며, 올해 신년사에서 5대 국정지표 중 하나로 내건 '인권'에 대해 말이 없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말해봤자 손해라고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이제 어떤 희망도 기대도 갖지 말라는 사망선고인가?

'대화'가 있기 며칠 전에도 국보법에 화가들이 작품 전시를 위협받았고, 하루 전에는 국내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재미동포 송학삼 씨가 국보법으로 구속되었다. 경찰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한 촌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진 줄로 착각하고,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호소해왔다. 부평에서는 노동자로 보이거나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면 불심검문과 연행을 당하는 무법천지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통령의 침묵은 국민에 대한 무시이자 오만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온갖 미사어구로 끌고 다니던 빈수레를 던져버리고 우리에게 폐기처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취지가 증발해버린 국가인권위원회법안과 부패방지법안, 수렁을 헤어나지 못하는 국보법 개폐 문제를 그 빈수레와 함께 소각하란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다. 취임식장에 손잡고 들어갔던 개혁사안들을 이제 문밖에 내쳐버리고 거지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방송사 관계자는 '국민과의 대화'에 앞서 '설문조사'를 실시해 '국민적 관심사' 위주로 나간 것이라 한다. 그 설문조사란 것이 갖는 객관성에 대해서는 자신 없어 하면서 청와대와의 '협의'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했다.

어찌됐건 청와대는 인권에 대해 입맛을 잃었음을 이번 '대화'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스스로 낙제생임을 인정하고 책상만 차지한 채 세월을 보내겠다는 배짱이 아니고서야 이런 처사는 있을 수 없다. 김 대통령은 스스로 인권을 '선전도구'로 이용했음을 명백히 증명했으며, 인권침해자의 증상으로 외치고 있다. "내 정권 하에서 '인권'을 논하지 말라!" 이제 인권에 대해 입을 다문 그대여, 국민의 열린 입이 그대를 삼킬 것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