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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복수노조 금지 족쇄에 묶인 노동자들 ③

정규직에 밀려 법외노조 신세


21일 밤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 서울 화양리에 위치한 한 풍물패의 연습실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주)쉐라톤 워커힐 한식집 명월관의 노동자들. 사람들은 방바닥에 앉자마자 고단한 하루의 끝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풀어헤친다. 법외 노조로 사무실 하나 변변히 갖추지 못한 명월관 노동조합은 주례 회의를 위해 이날도 풍물패 연습실을 밤 시간 동안 잠시 빌렸다. 노조가 설립된 지 1년 4개월, 이들이 아직도 법외 노조의 딱지를 떼지 못하는 건 바로 복수노조 금지 조항 때문이다.

처음 이들이 노조를 설립할 마음을 먹은 것은 99년 8월경이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 반까지 근무를 해야 했어요. 한달에 쉬는 날이 2번, 많아야 3번뿐이었죠." 시간외 근로수당, 연월차 수당도 물론 제대로 못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권리를 옹호해 줄 조직은 없었다. 한국노총 산하의 워커힐호텔 노조가 있긴 했지만, 노조는 정규직만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 조합의 규약에는 모든 노동자가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고 되어있지만, 워커힐호텔에 종사하는 전체 노동자의 51%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배제된 상태였다.

이에 명월관 노동자들은 99년 11월 12일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광진구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구청은 워커힐호텔 노조와 조직대상이 중복되기 때문에 복수노조 금지조항에 위배된다며 3차례나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명월관 노동자들은 독자노조를 설립할 수 있도록 규약을 변경하라고 워커힐호텔 노조에 요청했다. 하지만 워커힐호텔 노조는 2000년 5월 2일 보낸 답변서에서 "한국노총과 이념이 다른 별개의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규약의 개정을 요구한다는 것은 근시안적 사고"라며 단번에 명월관 노동자들의 요청을 거부했다. 한술 더떠 워커힐 호텔노조는 명월관 노조가 노동조합이나 위원장이라는 명칭을 사칭했다며 강력한 법적 대응을 강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면서도 막상 명월관 노동자들이 조합에 가입하겠다고 하면 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 상 안 되고, 사측에게도 부담이 될 거라며 퇴짜를 놓는 이중성을 보였다.

명월관 노동자들이 법외 노조 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당연히 회사 쪽은 노조 활동을 압박했다. 회사는 노조 간부의 개인 우편물을 뜯어 볼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노조원 3명을 부당하게 전직시키기도 했다. "주차요원을 세척조로 보내고, 웨이터를 석쇠 준비하는데 보냈어요. 노조 활동에 대한 보복 조치였던 거죠." 부당 전직을 당한 윤율 씨가 말했다. "그때 집단 행동이란 걸 처음 해봤어요. 전날 밤 노래방에서 두 시간 동안 돌아가며 연습한 구호도 외치구요." 하지만 당시의 집단행동에도 회사는 부당 전직을 철회하지 않았다. 사실 법외 노조 활동을 하면서 힘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은 그때만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들이 단위사업장에서의 복수노조 허용을 간절히 기다리는 건 당연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떳떳하게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서로를 다독거렸다. 그러나 난데없이 복수노조 허용을 5년 유예한다는 노사정 합의는 좌절 그 자체였다. "국회 앞에서 집회를 하던 중이었는데,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구요." 조형수 위원장은 말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기운 내야죠. 동지애 덕에 이제껏 싸워 올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그거 믿고 계속 싸워야죠." 21일 밤 노동자들의 힘찬 구호는 큰 울림이 되어 풍물패 연습실의 방음벽을 쳤다. "민주노조 쟁취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