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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복수노조 금지 족쇄에 묶인 노동자들 ②

홍익매점 노동조합을 허하라


"설립필증 나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려왔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지난 3년 동안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싸워왔던 철도공사 홍익매점 노동자들. 끈질긴 법정 공방 끝에 지난해 11월 대법원으로부터 '성과급 근로자도 근로자'라는 취지의 확정 판결을 얻어냈어도 요즘 통 살 맛이 안 난다. 노동자임을 인정받았으면서도 당연히 만들 수 있는 노동조합을 아직까지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한 복수노조 유보 결정은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다. "2월 1일 강서구청이 설립신고서를 반려했어요. 복수노조 금지라는 것이죠. 그 놈의 복수노조…." 지난 1월 17일 노조 설립 총회까지 마친 홍익매점 노조 손홍국 사무국장은 허탈해했다. 복수노조 유보 결정은 홍익매점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고자 어렵게 싸워왔던 세월을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노조

홍익매점 노동자들은 우리가 국철 구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판대 판매직원들이다. 하지만 철도 노조에는 철도 판매원(기차 안에서 수레를 끌고 다니는 판매원), 홍익회 4급 이하 사무직원 등이 가입돼있을 뿐 홍익매점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철도노조는 규약만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고 "성과급 영업사원들은 조합원 가입대상이 아니"라며 홍익매점 노동자들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판대 판매직원은 성과급 영업사원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철도노조 홍익회 본부는 강서구청 앞에서 설립필증 교부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고, 노조 설립신고서가 반려된 날에는 '홍익매점 노조 결성 무산'이라는 벽보를 붙이는 등 홍익매점 노동자들을 자극하기까지 했다. 장영석 노무사는 말한다. "철도노조는 철도공사와 한 통속이에요. 노조에 가입 안 시키려고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붙이죠. 철도공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은 보호하지만 홍익매점 노동자들은 뒷전이죠."


홍익매점 노동자들의 고단함

지난 5년여 동안 홍익매점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상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근로자성 인정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아내고도 정작 홍익매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해 그토록 염원했던 홍익회와의 임금 협상이나 단체 협상은 꿈도 못 꾼다. 철도노조 홍익회 본부에 가입돼있는 철도판매원은 홍익매점 노동자와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매년 임금도 오르고 법정 휴가도 얻는다. 그러나 홍익매점 노동자들은 365일 고된 업무에 쉬지도 못할뿐더러 오르지 않는 수수료 비율에도 불만을 나타낼 수 없다. 부친상을 당해 매점을 하루 닫으려 해도 대리 판매원을 구하지 못하면 일을 쉴 수 없다. 오히려 관리직에게 "당신 사정이지 내 사정이 아니다"라는 매정한 추궁을 받기 십상이다.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에 홍익회가 그 어떤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러도 개인적으로 싸워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익회 측은 현재 홍익매점 노동자들에게 개인 사업자 등록을 하게 해 용역으로 전환시키는 영업 방침을 택하고 있다. 이들을 아예 사업자로 만들어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같은 골치 아픈 요소를 미리 없애겠다는 심보다. 홍익회 측의 용역 전환 방식은 매우 끈질기다. 홍익매점 노동자들이 용역계약을 맺게되면 그나마 받고 있는 의료보험 혜택도 못받게 되고 안 그래도 팍팍한 이들의 삶은 점점 더 그늘질 것이다.

철도노조 민주화추진위원회 이철의 사무국장은 "용역계약을 하지 않고 노동자 지위를 고집하는 매점에 대해 홍익회는 회유, 협박, 방해 등으로 끈질기게 포기 공작을 펼친다"고 밝혔다. 사무실로 불러다 수 시간동안 면담을 한다든지 그래도 안 되면 근무시간, 태도, 청소 상태 등을 수시로 점검하여 경고조치한다는 것이다. 경고조치 3번이면 근로 계약 해지, 즉 해고를 당한다.

노조에 들어갈 수도 없고, 노조를 만들 수도 없는 홍익매점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용역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다. 1천2백여 명 가운데 벌써 60%가량의 노동자들이 용역 계약을 맺었다. 노사정위원회의 복수노조 유보 결정 후에 그 수는 더 급히 늘었다.


이렇게 5년을 더 참으라고요?

"그냥 사표를 쓰든지 용역계약을 하라는 거죠." 언제 경고조치 꼬투리를 잡힐지 몰라 4일째 그 좁은 매점에서 먹고 자고 있다는 손 사무국장의 말이다. "차라리 다 때려치우고 일용직이나 구해 볼까하는 생각도 해요. 근데 지금까지 당한 게 억울해서 못하죠." 며칠 전 용역계약을 강요하는 관리직원에게 손 사무국장은 한 마디 말을 건넸다고 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내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겠다"고. 복수노조 유보를 결정한 노동법 개정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손 사무국장을 비롯한 홍익매점 노동자들은 다시 5년을 더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