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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무노조 삼성의 인권유린을 고발한다 ③

격리 감금 회유 협박, 술수 총동원


삼성SDI(옛 삼성전관, 대표이사 김순택)엔 이상한 '면담제도'가 존재한다. 회사 인사책임자 또는 직속상사가 노동자를 데리고 전국을 여행하며 진행하는 '면담' 즉, 회사로부터 격리시킨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면담이다. 수원공장의 윤일철 제조2그룹장은 "회사는 통상적으로 사외에서 면담을 실시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며 면담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20여 일까지 진행되는 이 면담의 요지는 '노조설립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거나 사직하라는 것'. 노동자들은 대부분 회사 간부들의 집요한 요청에 굴복, '노조 포기 각서'를 쓰고 '면담'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해외근무지로 전출되거나, 아니면 일정한 보상금을 받고 퇴직하는 수순을 밟는다.

올 11월 징계해고를 당한 김갑수(38·삼성SDI 천안공장) 씨도 지난 10월 9일부터 무려 20여일 간 원치 않았던 '여행'을 다녀왔다<관련기사 11월 22일자>. 직속상사와 수원공장의 인사부장 등이 동행한 여행에서 김 씨는 회사측의 요구사항을 끝내 거부했고, 회사로 돌아온 그에게 돌아온 조치는 징계해고였다. 지난해 12월엔 수원공장의 노동자들이 김 씨와 똑같은 방식의 '면담'을 당했다. 그 가운데 한 노동자는 일본에서 귀국하려던 길에 억류돼 8일만에 희망퇴직서를 작성하고 말았다.

면담은 이렇게 점잖은 '격리'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삼성SDI 울산공장 해고자 송수근(38) 씨는 폭력배들이 동원돼 자신을 테러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격리시킨 뒤 집요한 '면담'

삼성SDI와 같이 '면담'으로도 노조설립을 사전봉쇄하지 못하면, '유령노조' 전술이 가동된다. 노동법 상의 복수노조 금지규정을 악용하는 것이다.

올 5월 삼성에스원 노동자들은 회사측이 20분 먼저 노조설립신고서를 접수하는 바람에 노조설립의 꿈을 접었다. 11월 삼성코닝의 '분사' 아텍엔지니어링(주)에서도 노조설립신고를 둘러싼 실랑이 끝에 회사측이 5분 먼저 노조설립신고서를 접수함으로써 '민주노조'의 건설이 무산되고 말았다.

회사측은 노조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주변 인물의 약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아텍엔지니어링에서 노조결성을 추진하다 해고를 당했던 한 노동자는 동료 노동자의 딱한 처지를 외면할 수 없어 결국 회사측과 '합의서'를 작성하고 말았다. 자신을 적극 따라주었던 후배 노동자가 '괘씸죄'로 인해 전출되면서 사택에서 쫓겨나게 되자, 그는 후배 노동자의 원직복직을 위해 '합의'를 선택한 것이다. 또 계열사에 근무하는 친인척을 들먹이며 '포기'를 종용하는 방법도 동원된다.

삼성그룹이 노조결성을 막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이처럼 집요하다. 때로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노조설립을 무산시켜왔고, 그것이 지금껏 무노조 신화를 유지해 온 '비결'이었다. 거기에 결사의 자유니, 노동3권이니 하는 것들은 낡은 서랍 속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들이다.


봉쇄 못하면 '유령노조'로 대응

정작 노조결성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묘한 의혹의 눈길이 쏠리기도 한다. 즉, 노조결성을 추진하고 그 와중에 해고를 당하는 것 자체가 '한몫' 챙기기 위한 의도라는 시선이다. 회사측의 회유에 굴복해 '보상금'을 받고 떠난 노동자들에게는 '배신'의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연말 삼성SDI에서 퇴직한 노동자는 수천만원 내지 억단위를 넘는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원장 김성환(43) 씨는 "삼성노동자들이 자기 몸값을 올리기 위해 싸우다 결국엔 돈 받고 해결하고 떠난다는 말을 들을 때면 고개를 들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신이 아닌 이상 삼성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을 이겨내기란 어렵다"고 말한다. 덧붙여 그는 "돈 받고 해결한 사람들은 얼굴을 들고 동료들 앞에도 나타나지도 못하고 피해 다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삼성의 무노조 신화는 노동자들의 가슴에 피멍을 남기며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돈 받고 물러나도 상처로

골리앗을 상대로 한 다윗의 싸움!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은 바로 이러한 처지에 놓여 있다. 행정관청이나 사법부 등 공권력 또한 그들의 편에 서지는 않았다. 공무원들을 상대로 '준삼성맨'이라고 말하는 노동자들의 비아냥, "약한 사람에게 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냉소가 삼성 노동자들에겐 자연스러운 푸념이다.

김성환 삼성해복투 위원장은 "삼성의 문제는 노사갈등이 아니라 범죄행위"라고 잘라 말하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의 해고자들은 올 2월 9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삼성'을 상대로 한 조직적인 투쟁을 결의했다. 무노조 철벽을 깨기 위해 험난한 장도를 걷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