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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지문 이어 유전자도 국가관리

검·경, '범죄자 유전자 채취' 합법화 추진

지난 1일 경찰청 산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아래 국과수)는 국내외 유전자 감식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유전자 자료 프로필 구축'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경찰은 그동안 은밀하게 준비해 왔던 '범죄자 유전자정보 은행'의 설립을 이번 학술행사 개최를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경찰이 추진중인 이른바 '유전자은행'이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고유한 유전자정보를 컴퓨터파일로 저장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국과수는 이미 91년부터 올 7월 현재까지 약 2만 건 이상의 유전자분석을 통해 기술적 노하우를 축적해 왔으며, 관련 자료를 '공문서 보관규칙'에 따라 '감정서 양식'으로 일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과는 별도로 유전자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대검 과학수사과 역시 '유전자 정보은행 설립에 관한 법률안'을 94년에 이미 마련한 바 있다. 당시 대검이 마련한 법률안에 따르면, "강도, 강간, 살인, 절도, 마약 등 11가지 범죄를 대상으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확정된 기결수로부터 채혈"하는 방식으로 유전자정보를 수집하게끔 되어 있다. 특히 이렇게 수집된 유전자정보는 '범죄수사' 목적 외에 '행정적 목적'으로까지 사용될 수 있도록 규정된 바 있다.


기술적 준비 완료…법 제정만 남아

경찰과 검찰이 주장하는 유전자은행 설립의 취지는 '과학수사'의 도입이다. 국과수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사건해결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으며, 자신의 유전자가 입력되어 있으면 범죄를 저질러도 금방 잡히게 된다는 의식을 갖게 되므로 범죄예방 효과도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유전자채취가 시행되면 일단 강력범들을 대상으로 할 것이며, 추후 모든 범죄자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과수 관계자에 따르면, 유전자은행 설립을 위한 기술적 준비는 거의 마무리됐으며, 관련 법률만 제정되면 곧바로 운영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검찰과 경찰의 관할 다툼으로 인해 유전자은행의 설립이 미뤄져 왔다. 경찰과 검찰 사이에 조정만 이뤄지면, 언제든 급류를 타고 추진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범죄자 인권침해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유전자채취가 합법화될 경우, 예상되는 인권침해 소지는 엄청나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김병수 간사는 "유전자은행을 이미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보험회사 등 민간으로부터 정보유출의 유혹이 계속되는 등, '또 다른' 목적으로 유전정보가 전용될 위험성은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과수가 '유전자 분석이 유전정보와 무관한 DNA의 특정 부분만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유전정보와 상관없다'고 주장하지만, 확보된 DNA를 이용하면 질병을 비롯한 다른 유전 정보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결국 다각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엇보다도 '범죄의 재발'을 전제로 유전정보를 채취하는 행위 자체는 '범죄자라 할지라도 신체의 고유한 영역을 강제적으로 침해당해서는 안 되며, 개인 프라이버시를 훼손당해서는 안 된다'는 인권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반면, "흉악범에겐 당연한 조치다. 흉악범이 되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는 경찰측 시각은 바로 이 점에서 차이가 있다. 김병수 씨는 또 "유전정보 수집이라는 발상은 범죄의 사회·환경적 요소를 무시하고 그 책임을 개인의 유전적 성향으로 돌리려는 것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여론검증 없이 검·경 일방독주

문제는 또 있다. 이렇게 인권침해 소지와 위험성을 갖는 사안이 오로지 경찰과 검찰에 독점된 가운데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론의 검증과정도 없는 상황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