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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재승의 인권이야기

민주화운동법을 인권법으로


올해 들어와 과거청산에 관한 몇 가지 규범이 계속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4․3, 의문사, 민주화운동에 관한 법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한국사의 어두운 그늘을 치유하는 데에 큰 진전을 이루기를 희망하면서 민주화운동법(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대한 생각 하나를 이야기하려 한다.

사람들은 물론 이 법에 대하여 몇 가지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왔다. 이 법이 민주화운동이 무엇인지 정의해 놓지 않았다는 점, 특정한 세대의 활동가들을 배제하였다는 점, 또 특정한 정부권력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요구를 아예 면제시키고 있다는 점 등등이다.

이 법률이 왜 한국판 인권선언으로 상승하지 못하는가를 고민해 보자. 인권선언이 되려면 이 법은 기본적으로 국가범죄를 중심개념으로 놓고 그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법 어디에도 국가범죄는 암시되지 않는다. 국가는 원래 정의로운 것인데, 그것을 더 정의롭게 하려는 시도가 민주화운동이라는 식이다. 국가권력 대 민주화운동의 관계가 '부정 대 정'이 아니라 '정 대 정'의 관계로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법은 국가가 바로 범죄의 주체였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고 있다. 법의 원칙상 희생자들은 부당하게 희생당했다는 점만으로 구제받아야 하는데도, 이 법은 무모하게 피해자의 행위가 민주화운동과 관련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책임을 희생자에게 다시 전가하고 있다.

또 민주화운동을 전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있다. 적극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 할 수 없지만 부당한 국가권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이 법의 바깥에 놓이게 된다. 인권은 시체말로 서푼짜리 인생들의 권리일 때에만 참으로 인권인 것이다. 민주화운동법은 사회의 민주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자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점에 관해서라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평등한 안목을 가져야만 한다. 예를 들어 세계인들은 히틀러에 대하여 쿠데타를 꾀하다 사형당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하잘것없는 인생을 살다가 수용소에서 맥없이 죽어간 유태인들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보상해주기를 요구해 왔다. 희생자들에 대한 도덕적 공훈심사가 아니라 부당한 희생자라는 보편적인 시각에서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민주화운동법은 국가범죄와 인권의 개념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법을 시행하기 위해 함께 자리한 사람들은 인권의 보편성 그리고 국가범죄 개념에까지 도달해서 이를 참다운 인권법으로 완성할 책무를 지고 있다. 국가범죄로 인한 희생자 모두를 구제하는 일반법으로 고양되게 말이다. 그럼에도 이 법을 마치 악마가 성경 보듯이 해석하거나 낱낱의 법조문을 꼬치꼬치 따지려는 율법주의자들에게는 화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