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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네팔여인


콜롬비아 출신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소설 중에 "난 전화를 걸려고 온 것 뿐이에요"라는 작품이 있다. 멕시코 출신 여성이 스페인에 살면서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자동차가 고장난다. 지나가는 차를 겨우 얻어타고서 남편에게 전화할 곳을 찾아가는데, 그 차는 정신병원으로 가는 환자들의 수송버스였다. "난 남편에게 전화를 걸려고 온 것 뿐이에요"라고 아무리 항변을 해도 그것은 전화에 대한 강박증으로 받아들여지고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천신만고 끝에 남편에게 연락이 닿았으나, 병원으로 찾아온 남편도 그 여성을 정신병자로 여긴다. 이에 좌절한 그 여성은 그때까지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포기하고 정신병원생활을 택해 여생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마르께스의 이 작품은 이성주의가 창궐하는 유럽에서 중남미 사람이 겪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다뤄 유럽문명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오래 전에 읽은 이 소설이 문득 생각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바로 소설과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네팔에서 이 나라를 찾아온 한 노동자 여성이 식당에서 음식값을 다투다가 경찰에 신고된 후 서툰 한국말로 네팔사람이라고 항변을 하였으나 헛소리하는 정신병자로 몰려서 6년의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고 한다. 소설의 내용과 실제상황은 발생원인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피해자인 여성들은 외국인이며, 그들의 조국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정신병자로 몰리게 되었다. 서구산업화의 발전정도, 경제적인 부의 차별성이 사건을 일으킨 공간적 여건을 형성한다. 또한 피해여성들이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분명한 악의가 개입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적 부에 따라 차별화된 공간적 여건은 사람들에게 문화로 내면화되어 있어서 다른 문화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밀폐된 시설에 감금하여 격리하는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로 수행되고 있을 뿐이다. 마르께스가 "위대한 레오파드"(그리스 신화에서 잔인함과 동물적 공격성, 악마 등을 상징함)로 묘사한 그 문화의 강자적 폭력성은 그 공간의 일상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피해여성은 폭력적으로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여 자신의 본래적 삶을 상실한다. 실제상황에서 우리나라라는 공간적 여건은 소설의 유럽과는 달리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을 당하여온 피해당사국이라는 성격도 갖고 있다. 결국 반인권적 상황을 창출하는 강자적 폭력과 문화적 공격성은 개인의 삶과 내면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며, 이는 특정한 사람이나 어느 집단에게만 특유한 속성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이루는 문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보편적 본능이라는 확인을 하게 한다. 인권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이점을 어디에 어떻게 자리지우는가 하는 것은, 내게는 버거운 화두이다.

강금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