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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4회 세계사회포럼을 다녀와서 (2)

'숨겨진 세상'과 호흡한 세계사회포럼 영화제


4회 세계사회포럼에서는 회의, 포럼, 워크숍 등의 장내 행사 이외에도 거리 캠페인, 퍼포먼스, 비주얼 아트 등 문화 행사들이 유달리 풍성했다.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세계사회포럼 2004 영화제' 역시 정치적 의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영화제 상영작들은 군사주의와 평화, 가부장제 등 세계사회포럼의 핵심 의제를 충실히 반영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인도 등 아시아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중심으로 세계각지에서 도착한 총 83편의 작품들은 △글로벌 시장 △일과 생존의 세계 △전쟁에서의 세계 △학대당하는 세계 △삶, 정치 그리고 투쟁 △여성의 세계 △정체성 △문화/저항 △다른 세계는 숨쉬고 있다 등 10여 개의 섹션으로 나눠져 상영됐다.

상영작 중 상당수는 이미 진보적 성격의 국제 영화제들에서 소개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수작들이었다.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변천해온 '회사'의 역사적 맥락을 탐방하며 그 영향력, 내부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흥미진진한 분석을 시도한 <회사 The Corporation>, 독일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낙인찍히며 살아가는 한 여성의 우울한 초상과 이와 비견되는 고도화된 물질세계를 포개어 놓으며 제3세계에서 이주한 이주민들이 겪는 절망감을 전하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의 관찰 Observations from Invisibility>, 과테말라와 베트남, 동티모르 등 죽음의 현장에 지난 50년 동안 개입해 온 미국의 외교 정책을 들추어내면서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역동적인 다큐멘터리 <누구의 이익인가? In Whose Interest?> 등이 그들이다. 또한 지난 9월의 칸쿤에서 있었던 투쟁을 담은 국내작 <킬로미터 제로>가 상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9월에 이르러서야 개최 여부가 결정되어 5명의 사람들이 4개월 동안 다급히 준비한 세계사회포럼 영화제는 곳곳에서 빈약한 인적, 물적 조건이 만들어낸 빈 구멍들이 보이기도 했다. 프로그래밍 책자가 제때에 공급되지 못해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상영장으로 향해야 했고, 제대로 장비가 갖추어지지 않아 상영이 자주 중단되었다. 상영장 밖에서 3-4명의 스텝들은 관객들로부터 쏟아지는 온갖 질문들을 받고 수시로 일어나는 상영 사고들에 대비하느라 분주했다. 전반적으로 열악한 상영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장은 연일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는 등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번 영화제의 총괄을 맡은 '매직 랜턴(Magic Lantern) 재단'의 가기 센(Gargi Sen) 씨는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한 명이 열 명 이상의 몫을 수행해야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작품 프로그래밍과 영화제 개최를 위한 기금 마련, 조직 운용까지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각지의 투쟁 사안들을 공간적 제약을 넘어 널릴 알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하고 보람차다"며 "2005년 브라질에서 열릴 세계사회포럼에서도 영화제를 다시 맡고 싶다"고 단언했다. "앞으로는 영화제를 조직하는 의욕적인 활동가들이 좀더 많이 결합했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비치기도 했다.

이제 첫발을 내딛은 세계사회포럼 영화제가 소비의 수단이나 고단한 일상의 도피처가 아니라, 숨겨진 세상과 호흡하려는 영화들의 새로운 창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